“45년간 (물감을) 밀어내기만 했는데….”
꽁지머리를 한 백발 노화가 하종현(79)은 우찬규 학고재 갤러리 대표로부터 출품작 6점 모두가 전시회 개막도 전에 완판됐다는 소식을 듣고 쑥스러워했다. 그의 작품 3점은 중국, 다른 3점은 대만 컬렉터가 구매해갔다.
중국 상하이 예술특구 모간산루(莫干山路) 50호(M50) 중심부에 위치한 ‘학고재 상하이 갤러리’에서 ‘생성의 자유(Unconstraint Creation) 전’이 지난 20일 개막됐다. 하 작가를 포함해 이우환(78) 정상화(82) 등 단색화(1970∼80년대 단색을 주조색으로 한 미술운동) 1세대 대표작가 3인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단색화는 올해 하반기 들어 해외 경매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데 상하이에서 전시가 열린 건 처음이다.
하 작가는 21일 국민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외국에서 공부해 어정쩡한 작품 세계를 갖는 제자들을 여럿 봤다”면서 “평생 한 발짝도 한국을 떠나지 않고 작품을 해온 게 나를 지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번 출품작은 그의 브랜드가 되다시피 한 ‘접합’ 시리즈다. 투박한 마대천을 이용해 뒷면에서 물감을 짓이겨 앞으로 배어나오게 하는 기법으로 색깔은 한결같이 단색을 썼다.
1930년대에 태어나 2차대전과 6·25전쟁을 잇따라 겪었던 그는 “원조 구호물자를 담거나 참호에서 모래주머니로 쓰이던 천이 마대”라면서 “마대는 배고픔과 전쟁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그의 작품 세계는 한국 근현대사와 맥이 닿아 있다. 하 작가는 올 들어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유명 갤러리, 영국 아트페어에 잇따라 작품을 선보인 데 이어 내년 상반기에는 뉴욕에서 전시가 예정돼 있다. 그는 “해외에 나가면 외모를 보고도 어느 나라 사람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다”며 “때로는 그런 고유함이 촌스러울 수도 있지만 촌스러움이 튀어나와야 세계화가 된다”고 강조했다.
내년 2월 8일까지 이어지는 전시는 현지 미술인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큐레이터 장빙씨는 “하 작가의 작품은 단순하면서도 많은 얘기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2001년 홍익대 교수를 정년퇴임한 후 퇴직금으로 ‘하종현미술상’을 제정, 후배 작가를 키워오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는 제한된 색으로 금욕적인 화면을 구사해 왔지만 앞으로는 내 화폭에서 어떤 색이라도 놀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상하이=글·사진 손영옥 선임기자
[인터뷰] 단색화 1세대 하종현씨 “한국적 촌스러움이 세계화와 통했지요”… 출품작 개막前 완판
입력 2014-12-23 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