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들떴다. 징글벨 징글벨 신나는 음악소리가 골목길에 울려 퍼졌다. 청소년들의 수다와 웃음소리는 거리를 가득 메웠다. 연말 상여금에 지갑이 두툼해진 직장인들은 퇴근길이 가벼웠다. 눈이 와도 춥지 않고 포근했다. 구세군 자선냄비엔 따뜻한 손길이 오갔다.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이하는 풍경은 이랬다. 강추위가 기승을 부려도 추위를 잊을 수 있었다. 지난 1년 어렵고 힘겨운 시간은 잊혀지고 내일이 기다려지는 시기였다.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어린 아이부터 산타 할아버지가 되는 어른까지 모두 기쁨과 소망을 가졌다.
대통령을 비롯해 정치인들은 유권자인 국민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기업은 돈을 벌게 해준 사회에 조금이라도 이익을 돌려주려 애썼다. 일반 서민은 권력도 돈도 없지만 허전하지 않았고 마음의 위로를 느꼈다. 지독하게 비판적인 사람도 일정부분 상대방의 성과에 박수를 보내는 미덕을 보였다. 치열하고 냉혹한 현실 속에서도 훈훈한 기운이 감돈 이유다.
‘정윤회 게이트’와 지록위마
그런데 2014년은 완전히 다르다. 냉혹하고 쓸쓸하고 비통한 기운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문제를 따지자는 게 아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그렇다는 얘기다. 당장 청와대가 엉망이다. 대한민국 최고 권력기관인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둘러싼 권력다툼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위키백과 사전에는 최근 ‘정윤회 게이트’가 새로 등장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의원 시절 비서실장 출신인 비선실세 정씨의 국정농단 의혹으로 규정돼 있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박 대통령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과의 미묘한 권력다툼 양상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오죽하면 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지록위마’(指鹿爲馬·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부른다)를 선택했을까. 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윗사람을 농락해 권세를 마음대로 하는 것에 대한 비아냥이다.
‘정윤회 게이트’는 여의도 정치권은 물론 국회 본연의 역할도 무디게 만들고 있다. 각종 민생법안은 소홀히 처리되고 중요 경제 관련 법안도 올스톱 상태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져 정신이 없는 청와대가 중심을 잡을 리 만무하다. 사정당국은 물론 경제부처까지 정부는 청와대 눈치만 보고 있는 형국이다. 국회는 방치하고 있다.
지친 국민은 위로받고 싶다
정치권이 이러니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대통령이 말로만 경제 살리기를 외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장기침체에 빠진 대한민국은 지금 수렁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부동산, 증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살아나는 게 없다. 생산자물가나 소비자물가를 굳이 들먹거릴 필요도 없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체제 이후 잠깐 반짝했던 ‘최노믹스’의 경제활성화 불씨마저 꺼져가고 있다. 기업들은 언제부턴가 곳간에 돈을 쌓아놓고 위험에 대비하고 있다. 투자보다는 위기대응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투자가 위축된 상황에서 ‘조현아 땅콩 회항’ 사건까지 벌어지면서 대기업 재벌들은 더 움츠러들고 있다. 확산되는 반재벌 정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내일이 무서운 소비자들은 아예 지갑을 닫아버렸다. 연말 경제상황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산타랠리’ ‘연말랠리’는 딴 나라 얘기다.
지난 20일 밤늦게 만난 택시 기사는 이런 얘기를 했다. “대한민국이 지금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나라인가요?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재벌도 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아요. 우리 같은 서민들은 누굴 의지하며 무슨 재미로 사나요.”
희망의 산타 없는 우울한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지친 국민은, 서민은 연말연시 뭔가 위로를 받고 싶다. 출발은 박 대통령이 하루빨리 불통에서 벗어나 국민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청와대부터 대대적인 쇄신이 이뤄지면 정부와 정치권도 점차 국민 눈높이에 맞춰 변화한다. 재벌을 포함한 사회의 ‘갑’들도 ‘을’들의 애환에 귀를 기울이고 이해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그래야 우리 국민은 새해에 희망을 걸 수 있다.
오종석 산업부장 jsoh@kmib.co.kr
[돋을새김-오종석] 산타 없는 2014 성탄
입력 2014-12-23 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