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흑인 남성, NYPD 2명 살해… ‘피의 보복’ 악순환

입력 2014-12-22 03:45 수정 2014-12-22 20:21
20대 흑인 남성의 총격으로 20일(현지시간) 현직 경찰관 2명이 숨진 뉴욕 브루클린 베드퍼드스타이베선트 지역의 도로에서 수사관들이 현장감식 활동을 벌이고 있다. 두 경찰관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한 명은 도착 전 숨졌고 다른 한 명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사망했다. 범인은 범행 직후 지하철역 안으로 도주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P연합뉴스
미국에서 경찰과 흑인들 간 ‘유혈 비극’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경찰의 체포 과정에서 흑인 2명이 숨진 사건과 관련해 이를 보복하는 내용의 메시지를 남긴 20대 흑인 남성이 20일(현지시간) 경찰관 2명을 사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미국 사회는 이번 사건을 ‘의도적인 암살’ ‘처형하듯 죽인 잔인한 살해’라고 규정하면서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뉴욕경찰(NYPD)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쯤 맨해튼 남쪽의 브루클린 베드퍼드스타이베선트 지역에서 이스마일 브린슬리라는 이름의 28세 흑인 남성이 순찰차에 탄 경찰관 2명에게 다가와 얼굴과 머리에 집중적으로 여러 발의 총격을 가했다. 류원진(32)과 라파엘 라모스(40)로 밝혀진 두 경찰관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한 명은 도착 전 숨졌고 다른 한 명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사망했다. 류원진은 7년차 경찰로 결혼한 지 2개월밖에 안됐다. 라모스는 학교 경비원 출신으로 2년 전에 평생 꿈꿔오던 경찰이 됐다. 그에게는 부인과 두 아들이 있다.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출신 폭력배인 브린슬리는 총격 직후 도주했다가 지하철역 안에서 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윌리엄 브래턴 NYPD 경찰국장은 “브린슬리가 범행에 앞서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최근 경찰 체포 도중 사망한 흑인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복수를 암시하는 메시지를 올렸다”고 말했다. 브린슬리는 메시지에서 경찰을 ‘돼지’라고 언급하며 “오늘 돼지들에게 날개를 달게 해주겠다(죽이겠다). 그들이 (우리 중) 한 명을 데려가면 (우리는) 둘을 데려가자”고 적었다.

브린슬리는 또 SNS 메시지 끝에 주제어를 분류하는 기호인 해시태그(#)를 이용해 최근 경찰 체포 과정에서 사망한 흑인 에릭 가너와 마이클 브라운의 이름을 남겼다. 브린슬리는 이날 오전 볼티모어에서는 자신의 전 여자친구에게 총을 쏴 다치게 했다. 볼티모어 당국은 몇 시간 뒤 브린슬리의 SNS 메시지를 입수하고 뉴욕경찰에 통보했으나 이미 총격이 벌어지던 상황이었다.

브래턴 국장은 정확한 범행동기를 조사 중이며 브린슬리가 흑백 차별철폐 시위에 참여한 적이 있는지 알아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브린슬리는 절도와 불법 총기소지 등의 전과가 여러 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여동생은 “오빠를 본 지 2년이나 됐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흑인을 체포하려다 숨지게 한 백인 경찰관에 대해 잇따라 불기소 처분이 내려진 뒤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이어져왔다. 가너는 지난 7월 뉴욕에서 담배를 팔던 중 백인 경찰의 ‘목 조르기’로 숨졌다. 브라운은 지난 8월 10일 미주리주 퍼거슨시에서 역시 백인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하지만 흑인차별 반대 시위를 이끌어온 전국행동네트워크(NAN)의 알 샤프턴 목사는 “가너와 브라운의 이름을 빌려 경찰을 폭행하거나 살해하는 행위는 부끄러운 일이고 정의 추구에도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