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진당 해산 이후]‘이석기 재판’운신 좁아진 대법원

입력 2014-12-22 03:23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두고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사이에 묘한 긴장이 흐르고 있다. 한발 앞서 헌재가 통진당을 해산시키면서 대법원의 보폭이 한층 좁아졌다. 대법원은 지난 9월 접수된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을 심리 중이다.

사법부 최고 권위를 둘러싼 위상에 지각변동이 시작됐다는 관측도 나온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21일 “이번 사건으로 헌재에 힘이 쏠리면서 양 사법기관의 권력관계가 비슷한 수준으로 가지 않을까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 전 의원 사건에서 대법원의 선택지는 확 줄었다. 그가 주축인 내란 관련 회합에 대해 헌재가 먼저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구체적 위협’으로 확정해 버렸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이 전 의원 내란사건에서 유죄를 선고할 경우 형사재판에서 헌재의 결정을 수용한 모양새가 된다. 사법부 최고기구인 대법원의 위상에 걸맞은 상황은 아니다. 박한철 헌재소장이 결정문을 낭독하는 모습이 전국에 생중계되면서 국민들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는 평가도 있다.

반대로 대법원이 이 전 의원 사건에서 헌재 결정과 모순되는 판결을 내리면 한 사건을 두고 두 가지 최종 결론을 용인하는 꼴이 된다. 정치적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헌재 선고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과반수가 통진당 해산 결정에 지지를 보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결정으로 힘을 받게 된 헌재가 ‘재판소원제도’를 밀어붙이리란 관측도 나온다. 재판소원은 법원 판결을 헌법소원심판 청구 대상에 포함시키는 제도다. 대법원은 “대법원의 판단 위에 사실상 하나의 심급을 더 주는 제도여서 헌법체계와 어긋난다”며 강력 반대하고 있다. 헌재는 지금도 ‘한정위헌’이라는 변형결정 형태로 사실상 재판소원 결정을 내리고 있지만 대법원은 헌재의 결정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

헌재가 ‘충분한 심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말을 각오하면서 통진당 해산심판 선고를 연내에 강행한 배경에는 이런 상황도 작용했으리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헌재는 이 전 의원의 내란 관련 회합이 위헌성을 갖는다고 인정하면서도 RO(혁명조직)의 실체에 대한 사실관계는 심리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법원과의 정면충돌은 절묘하게 피해간 것이다. 347쪽짜리 결정문 어디에도 RO 실체에 대한 판단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법원으로서는 위상 제고를 위해 꺼낼 마땅한 카드가 없는 상황이다. 지난 19일 새누리당 홍일표 의원 등 의원 168명이 ‘상고법원 설치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통진당 해산 이슈에 묻혔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