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1일 송구영신 예배를 드린 다음의 일이었다. 오전 3시쯤 충북 진천군 진천읍 하늘샘교회에서 발생한 불은 80평 예배당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소방서는 화재 원인이 전기 누전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강대상과 장의자, 피아노 등 성전 집기는 물론 식당에 있던 김치까지 검은 흉물로 변했다. 건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조립식 패널로 지은 교회는 화재에 취약했다. 사고 감식을 위해 교회 주변에 노란색 폴리스라인이 설치됐다. 시커멓게 그을린 성경책을 보니 박세옥(59) 담임목사의 마음도 타들어 갔다. 바람에 흔들리는 폴리스라인은 가냘픈 자신의 인생처럼 느껴졌다. 욥이 떠올랐지만 막상 고난 앞에 서자 욥과 같은 자세를 갖는 게 쉽지 않았다.
박 목사는 “불탄 교회는 2009년 3월 30여명의 교인과 함께 피땀 흘려 세운 자식 같은 공간이었다”면서 “금잔화도 심는 등 교회 주변을 예쁘게 단장했다. 성도들의 눈물겨운 헌신과 기도가 켜켜이 쌓인 교회였다”고 회고했다. 무엇보다 복음 전도와 영혼 구원의 열정을 보여줘야 할 교회가 부흥은커녕 화재로 사그라졌다는 게 창피했다. 설상가상으로 20여명은 이사를 하면서 교회를 떠났다.
‘하나님,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이렇게 저를 낭떠러지로 몰고 가시는 이유가 뭡니까!’ 화재의 충격은 컸다. 얼마간은 목회 의지마저 송두리째 흔들렸다. 그만큼 고생을 해서 건축한 교회였다.
박 목사는 1980년대 소명을 받고 침례신학대에 입학했다. 88년 3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진천에 교회를 개척했다. 2남1녀 중 둘째였던 딸은 88년 10월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 호흡곤란으로 사망했다. 97년 기독교한국침례회 행정국장으로 발탁돼 교회를 후임자에 맡기고 상경했다. 2008년까지 총회 일을 한 뒤 다시 진천으로 내려와 오순도순 사역을 시작했는데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철저하게 낮아짐을 경험했다. 자아가 부서지는 경험을 했다. 남아 있는 성도들을 보고 마음을 다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주님이 당한 고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음을 비우니 재기의 의욕이 생겼다. 흉물이 된 건물을 철거한 뒤 교회 부지와 부친의 자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거액을 헌금하겠다는 성도도 나왔다.
2012년 8월 기초공사까지는 했다. 하지만 헌금을 약속했던 성도는 연락이 끊겼다. 화재 후 10명의 성도들이 내는 헌금으론 대출 이자는 고사하고 생활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웠다. 정수기 판매와 봉고차 운전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박 목사는 “반찬을 살 돈도 없어 밥 한 그릇에 김치 하나 없이 물에 말아 먹으며 버틴 게 여러 번이었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고 고난이 거기서 그친 것은 아니다. 아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의 제단을 쌓던 모친은 지병이 악화돼 2012년 12월 소천하고 말았다.
박 목사 부부는 지금도 컨테이너 박스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 찬물에 설거지를 하는 사모를 보며 눈물을 삼킨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오늘도 박 목사는 예수 십자가에서 고난을 이겨내는 힘을 찾는다. “이 지역엔 외국인 근로자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습니다. 교회 근처에는 우석대 진천캠퍼스가 있습니다. 외국인 근로자와 대학생에게 그리스도의 보혈을 전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역할도 하고 싶습니다. 전국교회의 중보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어려운 교회를 도웁시다-국민일보·세복협 공동캠페인] 충북 진천 하늘샘교회
입력 2014-12-23 0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