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커로 추정되는 인물이 한국수력원자력의 원전 관련 내부 자료를 일주일 새 4차례나 네이버 블로그, 트위터 등에 공개하면서 한수원도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정확한 유출 규모와 경로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유포자가 원전을 중단하지 않으면 추가 자료를 유포하겠다고 경고함에 따라 자료 유출이 여기서 끝나지 않을 가능성도 높아졌다.
원전 자료 유출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원전반대그룹(Who am I)’이 21일 새벽 트위터(사진)를 통해 공개한 내부 자료는 총 4가지다. 고리원전 1·2호기 공기조화계통 도면 5장과 월성 3·4호기 최종안전성 분석보고서, 원전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인 MCNP와 BURN4 등이다. 원전반대그룹은 한수원 측에 성탄절이 오기 전에 고성 1·3호기, 월성 2호기 원전 가동을 중단하라고 경고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직 공개하지 않은 자료 10여만장을 전부 공개하고 2차 파괴를 실행하겠다는 협박도 했다.
원전 관련 자료가 잇따라 공개되고 정부는 이 같은 자료가 어떻게 유출된지도 모르는 채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일단 한수원 측은 해킹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한수원 관계자는 “여전히 해킹의 징후는 확인되지 않았다”며 “이번에 공개된 자료에도 최신 자료는 포함되지 않은 점에 비춰 유포자가 별도 루트로 과거 자료를 입수한 뒤 해킹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는 자료 유출이 확인될 때마다 “예민한 자료가 아니니 괜찮다”는 입장만 반복 중이다. 원전의 안전에 영향이 없는 일반자료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날 4차로 공개된 자료에 대해서도 “월성 3·4호기 관련 자료는 원전 건설 이후 운전개시 전에 발전소 운영허가를 위한 기술서류”라며 “MCNP는 미국에서 만든 노심설계용 공개 프로그램이고, BURN4는 일본에서 개발한 핵종량 계산프로그램인데 우리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뒷북 대응도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15일 처음으로 원전 자료가 네이버 블로그에 올라왔을 때도 한수원은 언론보도로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뒤 18일에 해당 블로그 폐쇄를 요청했다.
이번 사고가 ‘예고된 인재’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보안 관련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수원의 전체 인력 1만9693명 중 전산·보안 시스템을 관리하는 인력은 53명(0.27%)뿐이다. 이마저도 35명은 다른 업무를 병행하는 겸직이다. 그동안 이뤄졌던 보안 평가가 허술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올해 국가정보원이 실시한 정보보안 관리실태에서 한수원은 내부인원 보안 100점, 용역업체보안관리 부분 90.48점을 맞았다. 지난해는 두 분야 모두 100점이었다. 에너지정의행동은 “자세한 해킹 경로, 피해 상황, 배후 등은 관계기관 조사를 통해 살펴봐야겠지만 이번 일은 한수원이 얼마나 사이버 테러에 안일하게 대응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준 분명한 사례”라고 지적했다.세종=이용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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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12-22 02:16 수정 2014-12-22 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