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진당 해산 이후] “뻐꾸기가 낳은 알 품느라 뱁새 자기 새끼 다 잃어”

입력 2014-12-22 02:37 수정 2014-12-22 02:48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사건에서 인용과 기각으로 의견이 갈린 헌법재판관들은 결정문에 동서고금(東西古今)의 고사를 쏟아내며 논리 대결을 펼쳤다. 이 사건 결정의 핵심 전제인 ‘북한이 한국에 현실적 위협이 되는가’를 놓고도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해산 청구를 인용한 안창호 조용호 재판관은 결정문 말미에 통진당을 ‘뻐꾸기’로 비유했다. “뱁새 둥지에 뻐꾸기가 몰래 낳은 알을 정성껏 품는 바람에 뱁새는 자기 새끼들을 모두 잃었다”고 했다. 북한식 사회주의 정책을 추구하는 통진당을 ‘둥지’ 밖으로 내쫓지 않을 경우 한국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비유적으로 경고한 것이다.

두 재판관은 또 “북한 주장의 가면과 참모습을 알아야 한다”며 맹자의 고사 ‘피음사둔’(言皮淫邪遁·번드르르한 말 속에 숨은 본질을 간파한다)을 들었다. 이어 “광장의 중우(衆愚), 사이비 진보주의자, 인기 영합 정치인 등 이른바 레닌이 말한 ‘쓸모 있는 바보들’이 되지 말아야 한다”고도 했다.

마지막으로 “아주 작은 싹을 보고 흐름을 알고, 실마리를 보고도 결과를 알아야 한다(見微以知萌 見端以知末·견미이지맹 견단이지말)”는 한비자의 고사를 인용했다. 민주주의 질서를 부정하는 행위는 사전에 대처해 위험을 막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반면 통진당 해산 결정을 반대한 김이수 재판관은 “바다는 작은 물줄기들을 마다하지 않음으로써 깊이를 더해 간다(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하해불택세류 고능취기심)”는 제나라 관중의 고사를 내세웠다. 민주주의 장점과 기본정신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용에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그는 “다양한 견해와 새로운 발상을 포용하는 나라는 융성했고, 문을 닫고 한 가지 생각만 고집한 나라는 쇠락했다”며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명제도 과거에는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대석학들로부터도 거부당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김 재판관은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의 저서를 익명으로 인용한 후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제기가 계속되는 지금, 통진당은 넓은 의미의 대안체제로서 ‘진보적 민주주의’를 주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지난 9월 펴낸 ‘한국 자본주의’에서 “지금의 자본주의에 문제가 있다면 고쳐서라도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만드는 게 최선의 선택”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헌재 재판관들은 현재 한반도 정세가 통진당을 해산시켜야 할 만큼 심각한가를 두고 서로 다른 시각을 보였다. 다수 의견 측 재판관들은 “남북은 여전히 적대하고 총구를 겨누고 있다”며 아직 냉전구도라고 봤다. 통진당 세력이 아무리 미약하더라도 북한의 대남 적화통일 노선이 바뀌지 않는 한 충분히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들은 1928년 선거에서 2.6% 득표에 그쳤던 독일 나치당이 불과 4년 만에 제1당 자리에 오른 역사를 상기시키며 “향후 나치당 같은 사례가 다시 발생하지 않으리라고 단언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소수 의견을 낸 김 재판관은 “공산진영의 붕괴로 체제 경쟁은 무의미해졌다”고 선을 그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