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원인이 없는데 입안 덴 듯 아프다고요?

입력 2014-12-23 02:55
서울대치과병원 구강내과 고홍섭 교수가 구강작열감증후군을 호소하는 한 환자에게 X-선으로 찍은 입 안 사진을 가리키며 예방 및 치료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울대치과병원 제공
김연남(가명·72) 할머니는 3년 전부터 입이 화끈거리고 아파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살았다. 처음에는 아랫입술 중앙부위가 아팠다. 그렇게 시작된 입술 통증은 점차 입술 전체로 퍼져 조이는 듯 아프고 마치 안티프라민 연고를 바른 것처럼 화끈거렸다.

두세 달 전부터는 입술뿐만 아니라 혀까지 아프기 시작했다. 입 주변이 화끈거리며 혀가 마르고 사포처럼 꺼칠꺼칠해지면서 아팠다. 밤이 되면 통증이 더 심해져 모 대학병원 피부과에 가서 조직검사를 받았다.

그러나 병원 측은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했다. 입이 불타는 것처럼 화끈거리고 아픈데 아무 이상이 없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김 할머니는 “지금도 약을 먹으면 조금 덜 아픈 듯이 느껴지지만 입안이 불타는 듯 아픈 통증은 여전해 치과병원과 통증클리닉을 전전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장·노년층 고령 여성들 가운데 특별한 원인도 없이 입안이 화끈거리고 아파서 벙어리 냉가슴 앓듯 끙끙 앓는 사람들이 있다. 한번 발병하면 좀처럼 낫지를 않아 혹시 암이 아닐까 걱정하는 이들이 있는데, 암 때문이 아니라 바로 ‘구강작열감증후군(BMS)’이란 조금 생소한 병에 걸린 환자들이다.

불 타는 입 증후군 정도로 풀이할 수 있는 구강작열감증후군에 걸리면 혀, 입천장의 앞쪽, 입술 등이 화끈거리는 느낌과 함께 쓰리고 따끔거리며 아프다. 때로는 흡사 구강건조증이나 미맹(味盲)에 빠진 듯이 입안이 마르거나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환자들은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입 안의 이물감과 하루 종일 이어지는 통증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심지어 음식물을 먹는 것이 힘들어 기운이 빠지고 수면 장애가 심해져 잠을 못자거나 우울 증상까지 겪을 수 있다.

사실 구강작열감증후군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그렇지, 드문 병도 아니다. 보통 50세 이상 장·노년층에게서 발생하는데. 남성보다는 폐경기 여성에게 3배 정도 더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발생빈도는 폐경기 여성 10명 중 한두 명 꼴(12∼18%)로 보고돼 있다.

서울대치과병원 구강내과 고홍섭 교수는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이로 인해 각종 약물을 복용하는 만성질환자 및 노인인구가 증가하면서 발생률이 점점 더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원인은 감각신경계의 기능변화다. 일반적으로 혀나 구강점막에 가해지는 만성 자극이나 구강건조증이 있을 때, 당뇨와 비타민 결핍증과 같은 만성 질환이 있을 때, 수면장애 및 불안, 우울감이 팽배할 때 심해진다.

치료는 발병 원인이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우선 만성질환이 구강작열감증후군을 부추길 때는 그 질환을 퇴치하는 것이 우선이다. 고 교수는 “당뇨나 빈혈을 동반하고 있을 때는 혈당조절을 제대로 하고 빈혈을 바로잡는 것만으로도 불에 타는 듯한 입 안 통증을 많이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구강건조증 및 구강 진균(곰팡이) 감염도 흔한 원인 중 하나다. 구강건조증이 있으면 구강 작열감이 더 심해진다. 이럴 때는 인공타액을 사용하거나 타액 분비를 촉진시키는 약 처방이 필요하다.

한편, 구강건조증으로 침이 부족하면 입 안에 곰팡이가 쉽게 자라서 통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때는 균에 의한 감염이 대부분이므로 향진균제를 쓰면 통증이 사라진다.

격심한 스트레스, 우울증 등 심리적 요인으로 인해 입 안에 통증을 느끼기도 하는데 이 경우엔 원인이 되는 정신과 질환을 먼저 치료해야 한다. 바로 폐경기를 거치면서 불안, 초조감이나 우울증을 경험하는 등 심리적인 영향을 크게 받는 여성들이 구강작열감증후군을 호소하는 경우다.

구강암과 같은 암 질환에 대한 공포증, 우울증과 불면증도 구강작열감증후군을 유발한다. 이렇게 발병에 심리적인 영향이 크다고 여겨질 때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암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없애야 한다.

김찬병원 통증의학과 한경림 원장은 “식사를 잘 못하는 노인의 경우엔 비타민 B군을 포함한 영양분이 결핍되지 않도록 섭생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