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진당, 대한민국이 용인한 자유 넘어섰다

입력 2014-12-20 03:30
2014년 12월 19일, 통합진보당이 막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 헌법 제8조 4항이 부여한 권한에 따라 통진당 강제 해산을 선언했다. 민주주의(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키려 민주주의(정당의 자유)를 제한한 것이다. 그것이 분단 70년의 대한민국 현실에 필요한 선택이라고 헌재는 판단했다.

의회민주주의의 근간인 정당이 자진 해산이나 선거를 통해서가 아니라 사법기관에 의해 문을 닫기는 헌정사상 처음이다. 진보세력이 국회에 진출한 지 꼭 10년 만에 진보정치의 한 축이 무너졌다.

헌재는 19일 정부의 청구를 받아들여 통진당 해산을 선고했다. 통진당에 적을 둔 국회의원 5명(김미희 김재연 오병윤 이상규 이석기) 전원의 의원직도 박탈했다. 헌재 결정에 재심 절차는 없다. 헌법재판관 9명 가운데 박한철 헌재소장을 비롯해 절대다수인 8명이 해산에 찬성했다. 김이수 재판관만 반대 의견을 냈다.

8인의 재판관은 통진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직접적·실질적 위협이 돼 “시급히 제거해야 한다”고 봤다. ‘민주주의의 적’에 관용을 베풀 수 없다는 방어적 민주주의 논리를 따랐다.

헌재는 통진당을 장악한 세력이 북한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면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폭력혁명을 통해 과도기 단계인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이를 기초로 통일을 달성한 뒤 궁극적으로 사회주의 체제를 건설하는 데 존재 목적을 뒀다는 것이다. 통진당 강령인 진보적 민주주의란 결국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과 거의 모든 점에서 같거나 유사하다는 게 헌재의 평가다. 헌재는 “북한식 사회주의는 1인 독재 통치를 본질로 추구하는 점에서 우리 헌법 가치와 근본적으로 충돌한다”고 말했다.

헌재는 통진당의 이런 숨은 의도가 ‘이석기 내란사건’에서 현실로 확인됐다고 했다. 내란음모 사건이 해산심판의 발단이 됐을 뿐 아니라 통진당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 요인이 됐다는 뜻이다. 헌재는 내란 논의 회합(지난해 5월 ‘RO’ 비밀회합)에 대해 ‘실질적 해악을 끼칠 구체적 위험성의 발현’이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라 “합법 정당을 가장해 국민의 세금으로 정당보조금을 받아 활동하면서 (뒤로는) 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려는 통진당 고유의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정당해산 외에 대안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의원직 박탈에 대해선 “위헌정당의 해산을 명하는 비상상황에서는 국회의원의 국민 대표성은 희생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통진당 이정희 대표는 헌재 선고 직후 “민주주의가 무너졌다. 말할 자유, 모임의 자유를 송두리째 부정당할 암흑의 시간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박근혜정권이 대한민국을 독재국가로 후퇴시켰다”고 주장했다. 여러 보수단체들은 위헌정당 선고가 나자마자 통진당 의원과 전체 당원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