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문 347쪽… 헌재 사상 최장

입력 2014-12-20 03:11
지난해 11월 5일 정부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 이후 409일간 진행된 재판에서 법무부와 통진당은 제기되는 쟁점마다 날선 공방을 펼쳤다. 막대한 분량의 증거자료와 참고자료가 쏟아졌고, 헌법재판관 9명과 헌법연구관 70여명은 수시로 열린 평의 때마다 ‘법리전쟁’을 벌였다.

그 결과 1988년 헌법재판소 창설 이후 가장 방대한 것으로 추정되는 347쪽짜리 결정문이 나왔다. 2004년 5월 14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63쪽)보다 5배 많은 양이다. 일반적 헌재 사건과 비교해 63쪽도 상당히 많은 분량이었다.

첫 재판준비기일에 향후 어떤 방식으로 증거를 채택할지 논의할 때부터 의견이 갈렸다. 법무부는 자유롭게 증거를 제출하는 민사소송법을, 방어하는 입장의 통진당은 적법한 조사를 거친 증거만 사용하는 형사소송법을 준용해야 한다고 맞섰다.

헌재가 민사소송법을 준용키로 하면서 법무부의 물량공세가 시작됐다. 법무부는 지난 1월에만 국가보안법 관련 판결문과 독일의 정당해산심판 판결문 번역자료 등 1t 트럭 3대 분량의 서증자료를 제출했다. 통진당 측 이재화 변호사는 “트럭으로 쓰레기 같은 증거를 퍼다 내고 있다”며 신경전을 벌였다. 재판이 마무리될 때까지 법무부와 통진당이 제출한 서증자료는 각각 2907건과 908건이다. A4용지로 17만5000쪽에 무게는 900㎏이 넘고, 쌓으면 높이가 18m에 이른다.

헌법연구관들은 1년 내내 증거더미에 파묻혀 살았다. 재판관들은 매달 2차례 공개변론을 진행하며 유례없는 강행군을 펼쳤다. 대의제 민주주의 역사와 국내 진보세력 계보, 해외 정당해산 사례 등 증거 외 참고자료도 검토했다. 한 헌법연구관은 19일 “동학혁명부터 통진당까지 한국 진보세력의 역사를 처음부터 새롭게 공부하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법무부가 제출한 ‘주체의 한국사회변혁운동론’ 등 일부 증거는 논란이 되기도 했다. 북한 정치사상을 담은 이 문건은 검찰이 2011년 민주노동당 간부에게 압수한 것이다. 통진당 측은 전신인 민노당을 심판 대상에 포함시켜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공개변론에는 증인 12명과 참고인 6명도 재판에 참여했다. 김영환 전 민혁당 총책과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제보자 이모씨 등이 법무부 측 증언대에 섰다. 권영길 전 민노당 대표, 노회찬 전 의원 등은 통진당 측 증인으로 나섰다. 지난달 25일 최종변론에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작은 개미굴이 둑 전체를 무너뜨린다”며 통진당 해산을 역설했다. 이정희 통진당 대표는 “민주주의의 진전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달라”고 호소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