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19일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통해 대한민국 정당이 추구할 수 있는 자유의 한계가 ‘휴전선’을 넘어서선 안 된다고 못 박았다. 다양성이 인정되지 않는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는 우리 헌법의 테두리 바깥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통진당은 이런 북한식 체제를 추종하는 폭력적·비민주적 집단으로 규정됐다. 통진당의 주장은 헌재의 해산 인용 결정에 한 줄도 반영되지 않았다.
◇‘북한식 사회주의’ 목표로 ‘비민주적·폭력적’ 활동=헌재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조선노동당이 제시하는 정치노선을 절대선으로 받아들이고 독재와 수령론에 기초한 1인 독재 체제’로 정의했다. 다양한 진리가 존재할 수 있다는 다원적 세계관을 기본으로 하는 우리 헌법과 “근본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게 헌재 판단이다.
헌재는 347쪽에 이르는 결정문의 상당 분량을 할애해 통진당을 주도하는 자주파(NL·민족해방계열) 세력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주파 주도로 통진당 강령에 도입된 ‘진보적 민주주의’는 사회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1차 단계다. 최우선 과제로 ‘민족자주’를 꼽고 있다. 이에 대해 헌재는 한국을 미국과 외세에 예속된 ‘식민지 반자본주의 사회’로 보는 기본인식이 북한과 비슷하다고 판단했다. 이 밖에 진보적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변혁의 주체 및 대상, 전술적 방법 등이 북한의 대남혁명 전략과 거의 모든 점에서 유사하다는 점도 인정됐다. 재판부는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전민항쟁이나 저항권 등 폭력을 동원할 수 있다는 인식은 민주적 기본질서에 정면으로 저촉된다”고 판시했다. 통진당 주요 당직자들이 핵개발이나 3대 세습 등 북한 문제에 관해 맹목적 지지를 보내면서 거꾸로 북한의 무력도발 책임까지 우리 정부에 있다는 식으로 무리하게 비판한다는 점도 거론됐다.
헌재는 정당해산 요건의 한 축인 통진당의 ‘활동’ 역시 헌법에 위배된다고 봤다. 비례대표 부정경선과 중앙위원회 폭력 사태, 서울 관악을 지역구 여론조작 사건 등은 민주주의 원리인 선거제도를 형해화(形骸化)하는 행위로 규정됐다. 통진당은 “합법적 의사결정 과정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헌재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건에서만 그러할 뿐”이라고 일축했다. 애국가를 부정하고 태극기를 게양하지 않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졌다.
◇민주주의에 시급한 위협…해산 외엔 방법 없다=헌재는 정당해산을 규정한 헌법 제8조 4항의 ‘양면성’에 대해 설명했다. 이 조항은 함부로 정당을 해산하지 못하도록 규정하는 동시에 민주적 기본질서를 넘어서는 정당은 존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재판부는 통진당을 ‘시급히 제거할 필요가 있는 위협’으로 판단해 후자에 방점을 찍었다. 정당이 정치적 견해를 개진하는 과정에서 민주적 기본질서와 다소 상치되는 주장을 제시할 수도 있다. 하지만 통진당은 각종 조직적 활동을 통해 계획적·적극적으로 민주적 기본질서를 공격하고 있다는 것이다.
통진당 측은 일개 당원의 일탈행위를 이유로 정당을 해산하는 건 비례원칙(기본권을 제한하는 국가권력 행사는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는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했지만 헌재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위법행위가 확인된 개개인에 대한 형사처벌이 가능하지만 그것만으로 정당 자체의 위헌성이 제거되지 않는다”고 했다. 통진당 자주파 세력은 언제든 위헌적 목적을 정당 정책으로 내걸어 곧바로 실현할 수 있다는 게 헌재의 인식이다. 해산 결정으로 민주적 질서를 수호해 얻는 이익이 그로 인해 초래되는 통진당원의 정당활동 자유 제한이란 불이익보다 월등히 크고 중요하다는 판단도 덧붙였다. 해산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을 궁극적으로 타도·전복하려는 북한과 대치 중인 특수상황도 고려됐다. 재판부는 “한국과 북한은 아직 냉전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결정문에 밝혔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통진당 해산 선고] 북한식 사회주의 추종·폭력적 활동 “용납 안된다”
입력 2014-12-20 0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