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약하는 창작 발레… 아직은 갈길 멀다

입력 2014-12-22 03:30
서울발레시어터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제작한 창작 발레 ‘레이지(RAGE)’. 지난 18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 현예술극장에서 첫 선을 보인 이 발레는 현대 사회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와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을 파격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서울발레시어터 제공

토슈즈도 신지 않은 발레리나와 발레리노가 무대 위를 질주한다. 조명을 걸어놓은 천정의 거대한 철제 구조물은 공연 도중 무대를 덮칠 듯 내려온다.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에서 선보인 서울발레시어터의 ‘레이지(RAGE)’는 창작 발레답게 기발한 시도를 했다. 토슈즈를 벗은 무용수들의 발은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반항처럼 느껴진다. 무용수 머리 위로 내려온 철제 구조물은 사람들을 억압하는 장치로 활용됐다.

‘레이지’를 만든 서울발레시어터 상임안무가 제임스 전 예술 감독은 “현대 사회에 대한 분노와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질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전 감독은 자신의 이야기도 작품 속에 담았다. 그는 “15년 간 발레단을 운영하면서 빛이 보이지를 않으니 지쳐 있었고 울화통이 치밀었었다”면서 “공연 문화가 앞서 있는 미국의 좋은 시스템을 한국에 알리기 위해 정말 열심히 뛰었고 이 정도면 바뀌겠구나 싶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 감정을 이번 작품에 반영했다”고 말했다.

전 감독 말처럼 사립 발레단들이 창작 발레를 내놓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에선 창작 발레가 뿌리내리기엔 어려운 점이 많다. 발레단을 운영하는 단장들은 창작자들이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강조한다.

공연장에서 장기간 발레 공연을 올릴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되는 게 급선무다. 문예회관 등 지방 공연장들이 공연장을 비워두고도 발레 공연에는 길어야 일주일 정도의 시간만 준다는 것이다. 그나마 ‘백조의 호수’ 등 클래식 발레는 유명세 때문에라도 관객들이 찾아 공연 기회를 잡기 쉽지만 창작 발레는 공연 기회조자 얻기 어렵다. 공연 기간이 짧다 보니 기업 후원도 쉽지 않다.

부산의 한 사립 발레단장은 “대중의 인기가 높은 뮤지컬은 공연 기간이 2, 3개월이나 돼 기업의 후원을 많이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발레는 하루, 이틀 만에 공연이 끝난다”며 “정해진 기간동안 발레 공연을 올려야 하는 쿼터제를 만들어 공연장에 적용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저작권 문제를 보다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필요하다. 창작물에 사용하는 음악의 경우 사용 전에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클래식은 저작권자가 없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데 반해 근·현대 음악은 사정이 다르다. 현재 발레단들은 음악을 사용하려면 직접 협회와 음반사에서 사용 허락을 받는다. 해외 음반사에서 유통하는 외국 곡은 수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서울발레시어터는 ‘레이지’에 ‘미니멀리즘 음악’의 대표 작곡가인 필립 글래스와 존 애덤스의 곡을 사용하기 위해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측에 사용 여부를 타진한 상태다. 김인희 단장은 “발레뿐만 아니라 음악이 들어가는 공연들이 해외 음원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통합 플랫폼 등을 만들어 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저작권료를 받고 안무 저작권을 판매하는 방식도 고민해야 한다. 미국 뉴욕 국제공연예술협회(ISPA) 등에서 창작 발레를 판매하는 시장을 갖고 있음에도 참여하는 발레단은 많지 않다. 예전에 비해 정부 지원이 늘어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레이지’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14 무용 창작산실 우수작품 제작지원작’으로 선정됐다.

지방의 한 사립 발레단장은 “외국에 비해 우리 정부는 문화 사업에 지원을 많이 해 준다”면서도 “재정 지원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인 시스템을 만들어 주는 게 더 시급하다”고 말했다.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