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후 8시 중국 쓰촨성 난충시 시충현의 한 마을에서 회의가 열렸다. 쿤쿤(8·가명)은 왁자지껄한 소리를 따라 회의장으로 들어가 우두커니 지켜봤다. 에이즈에 걸린 아이를 마을에서 추방하자는 결론이 났다. 그리고 서명이 시작됐다.
에이즈에 걸린 아이는 바로 쿤쿤이다. 자신의 일로 회의가 열린다는 것도 모른 채 마을 어른들이 서명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203명이 서명한 청원서는 지방 정부에 제출됐다.
쿤쿤은 아직도 에이즈에 걸린 것을 모른다. 정상적으로 학교에 다녔다면 초등학교 2학년이지만 학교에 갈 수 없다. 친구도 없어 매일 혼자서 들판을 달리거나 흙 놀이를 하면서 논다. 한 마을 주민은 “쿤쿤은 시한폭탄이다. 우리 애와 쿤쿤은 다르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쿤쿤과 접촉하거나 혹시 쿤쿤이 우리 애를 물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했다.
쿤쿤이 에이즈에 걸린 사실이 알려진 것은 2011년 여름 다섯 살 때였다. 9개월 때부터 쿤쿤을 혼자 맡아 기르는 할아버지 뤄성은 이마가 깨진 쿤쿤을 데리고 병원에 갔다가 엄마 뱃속에서 에이즈에 감염됐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엄마는 쿤쿤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집을 나갔고 타지에 나가 돈을 벌고 있는 아빠는 매달 유치원비와 생활비를 보내 왔지만 에이즈 소식 이후에는 연락을 끊었다. 매월 600위안(약 10만원)의 정부 보조금만으로는 버티기 힘든 할아버지도 203명의 서명자 명단에 들어가 있다. 왕수린 촌장은 “마을에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면서 “정부 기구에서 쿤쿤을 수용해 치료하고 교육시켜주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쿤쿤의 소식은 지난 17일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인터넷 사이트 인민망을 통해 처음 보도됐다. 18일 밤 관영 CCTV도 관련 소식을 상세히 전했다. 수십만명이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에 글을 올렸다. 한 네티즌은 “병은 무섭지 않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들의 무지”라고 했고 다른 네티즌은 “정부가 나서서 도와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 공식 통계로 중국의 에이즈 환자는 49만7000명이다. 유엔에이즈계획(UNAIDS)은 최소 78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012년 베이징의 한 병원을 찾아 에이즈 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 에이즈 예방과 환자 관리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인 펑리위안 여사는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 친선대사이자 중국 정부의 에이즈예방선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편견은 그대로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
중국 에이즈 소년의 가련한 삶
입력 2014-12-20 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