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희년의 복음

입력 2014-12-22 02:56

로마법에 따르면 ‘종’ 혹은 ‘노예’는 인권이 아닌 물권에 해당됐기에 주인 마음에 따라 언제든지 ‘처분’ 가능한 물건이었습니다. 도망친 종은 사형에 처해졌으며 방조자도 심한 벌을 받았습니다. ‘유익한 자’ 혹은 ‘쓸모 있는 자’라는 이름을 가진 오네시모는 그 이름의 뜻과는 대조적으로 주인인 빌레몬에게 해를 끼치고 도망을 친 ‘무익한’ 종이었습니다(11절). 골로새에서 도망친 오네시모는 떠돌이 인생을 살다가 로마 감옥에서 바울을 만나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접했고 그곳에서 거듭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습니다. 오네시모를 위한 바울의 섬김을 세 가지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 회심케 하고 영적 지도자로 세워주며 섬겼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오네시모는 사도 바울의 영적 아들이요(10절) 사랑 받는 형제가 됐습니다(16절). 노년의 바울은 곁에 있는 동역자의 손을 빌리지 않고 친필로(19절) 서신을 보낼 만큼 각별한 사랑의 권고로 간청을 했고, 오네시모를 ‘유익한’ 동역자로 영접할 것을 요청했습니다(17절).

둘째, 정신적 억압과 육체적 사슬을 끊어주었습니다.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서 도망쳐 나올 때에는 그가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갈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도망친 노예에게 응당한 처벌로 몰매나 사형 말고 다른 무슨 기대가 있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오네시모를 주인에게 되돌려 보내면서 “이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16절)라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파격적인 제안인가요. 빌레몬과 오네시모 모두에게 엄청난 부담이었고 로마법마저도 초월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결코 강요하거나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명령할 수도 있으나”(8절) 바울은 빌레몬을 향한 신뢰를 확인시키면서 “내가 말한 것보다 더 행할 줄을 안다”(21절)며 사랑으로써 권면했을 뿐입니다.

셋째, 바울은 오네시모의 경제적 문제까지 책임졌습니다.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18절)는 말씀은 바울 자신이 오네시모를 위해 빚을 갚아 주겠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영적, 신체적, 경제적 세 가지 측면에서 오네시모를 섬긴 바울의 모습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대속(고엘)의 십자가 사건을 상기시킵니다. 이것은 곧 ‘희년의 복음’입니다. 희년의 핵심적 실천이 성취된 것입니다(레위기 25장).

빌레몬은 바울의 권고에 순종함으로써 노예해방과 부채탕감을 실천했습니다. 오네시모는 도망쳐 나옴으로써 잃어버렸던 삶의 근거지, 가족과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의 지분까지 회복했습니다. 결국 오네시모는 부채탕감과 노예해방, 그리고 토지반환이라는 희년의 복음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노예였던 오네시모는 주후 95년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박해로 순교할 때까지 초대교회의 유력한 영적 거점인 에베소교회의 감독으로 헌신하며(이그나티우스의 서신) 그리스도의 ‘유익한 종’으로 쓰임을 받는 인생으로 살았습니다. 겸손의 왕으로 오셔서 ‘희년의 복음’을 선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재림을 사모하는 대림절 기간입니다.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함으로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는”(눅 4:18∼19) 유익한 인생을 사는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김유준 목사(연세차세대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