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임직원들이 ‘땅콩 회항’ 사건을 조직적으로 축소·은폐한 정황을 잡고 검찰이 본격적인 ‘증거인멸’ 수사에 나섰다.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이근수)는 18일 박창진(44) 사무장과 승무원들에게 허위 진술토록 압박하는 등 증거인멸을 주도했다고 알려진 대한항공 여모(57) 상무를 재소환해 정식 입건하고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해 조사했다.
여 상무는 사무장과 승무원들의 직속상관인 객실 담당 임원이다. 박 사무장 등에게 이 사건을 회사에 처음 보고한 이메일을 삭제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사무장이 처음 국토교통부 조사를 받을 때 19분간 배석했던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검찰은 여 상무가 이 과정에서 조현아(40) 전 부사장에게 전후 사정을 문자와 전화 등으로 보고한 정황도 일부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시간이나 전후로 회유 상황을 보고받았다면 증거인멸 혐의가 조 전 부사장에게까지 적용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워진다. 조 전 부사장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될 수도 있다.
검찰은 조 전 부사장을 포함한 대한항공 임직원 여러 명의 통신기록도 추가로 압수해 분석 중이다. 압수 대상 통신기록을 사건 발생 직후부터 최근까지로 연장했다. 모두 일등석 승객 박모(32·여)씨, 박 사무장, 승무원 등 관련자들을 회유·압박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인물들이다.
조사 결과에 따라 조 전 부사장과 여 상무 외에 대한항공 법인과 다른 임직원이 피의자로 전환될 수 있다. 검찰은 필요한 경우 대질신문을 진행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전날 12시간 동안 검찰 조사를 받은 조 전 부사장은 조직적 축소·은폐 의혹과 기내 폭행, 램프 리턴(항공기를 탑승 게이트로 되돌리는 일) 지시 혐의 등을 일부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조 전 부사장이 사적인 용무에도 일등석 항공권을 무상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서울서부지검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실련은 “반복된 무상 탑승으로 취한 이익이 5억원을 넘기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 따라 가중 처벌받을 수 있다”며 “무상 항공권은 소득세법상 기타소득에 해당하므로 세금을 내지 않았다면 탈세”라고 주장했다. 대한항공 측은 “복지 차원에서 일반 직원에게 항공권 35장이 지급된다. 임원은 이보다 더 많이 나온다”며 “전무 이상 직급의 경우 휴가 때 항공기를 이용하더라도 빈 좌석이 있으면 일등석을 탈 수 있다”고 해명했다.
부실조사 논란에 휩싸인 국토교통부는 자체 감사에 착수했다. 대한항공 출신 항공안전감독관 2명을 조사단에 포함시킨 점, 박 사무장을 조사할 때 대한항공 임원을 배석시킨 점, 일등석 승객 연락처를 뒤늦게 파악한 점 등은 ‘봐주기 조사’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땅콩 회항’ 여파로 대한항공과 모기업인 한진칼의 주식 시가총액은 2359억원이 줄었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12일부터 7일 동안 대한항공 주가는 5.0%, 한진칼은 5.47% 하락했다. 조 전 부사장, 조원태 부사장, 조현민 전무 등 한진그룹 오너 3남매가 보유한 상장주식 가치도 67억원 감소했다. 같은 기간 아시아나항공 주가는 5.55% 올랐다.
전수민 강창욱 기자, 세종=이용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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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인멸 주도’ 대한항공 상무 피의자 전환
입력 2014-12-19 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