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히스토리] 전문인재에 자본 더하니 수익·일자리 쑥쑥

입력 2014-12-19 03:27
고택을 활용해 관광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최초의 사회적기업 ‘행복전통마을 구름에’. 경북 안동시의 수물 위기에 놓인 고택을 호텔식으로 개조해 최고급 리조트로 변화시켰다. SK그룹 제공
LG전자와 LG화학이 지난 1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LG소셜펀드’ 공개경연대회와 ‘사회적경제 활성화 기금’ 전달식을 개최하고 있다. LG그룹 제공
대기업 최초로 일자리 제공형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받은 한화B&B의 델리카페 빈스앤베리즈 서울 신설점 매장에서 직원과 손님이 밝게 웃고 있다. 한화그룹 제공
사회적기업이 진화하고 있다. 국내에서 2007년 이후 본격화된 1세대 사회적기업은 과거 정부나 대기업의 지원을 받아 어려운 이웃을 돕는 자선단체 수준에 가까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노하우가 쌓이면서 사회적기업도 일반 기업처럼 이윤창출에 중점을 두고 고용을 통해 취약계층의 확실한 자립을 돕는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있다. 사업영역도 다양해지면서 특정계층을 타깃으로 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도 등장했다. 바야흐로 사회적기업이 보다 안정적인 사회안전망으로 자리 잡는 2세대로 진입하고 있는 셈이다.

사회적 기업 핵심은 ‘영속성’

사회적기업은 영리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수익이 많이 발생해 사회적기업이 생존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고, 그로 인해 사회적 가치를 지속적으로 추구할 수 있다면 최상의 모델이다. 그런데 초기 사회적기업은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설립했다가 망하거나 영세한 경영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회적기업이 부지기수다. 정부가 사회적기업 근로자 임금을 보전해 주거나 사업체에 대한 세금 감면 혜택을 주지만 근근이 경영을 이어갈 수 있는 수준이 고작이다. ‘언발에 오줌 누는 식’ 지원이 끊어지면 금세 경영난에 봉착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사회적기업의 생존 환경은 몹시 열악하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주영순 새누리당 의원이 최근 사회적기업진흥원으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2013년(2012년 기간) 사회적기업 경영공시 현황’ 자료에 따르면 경영공시 참여 81개 기업 중 흑자를 낸 곳은 18개(22.2%) 기업에 불과했다. 사회적기업의 약 80%는 정부 지원이 끊기면 회사 문을 닫아야 하는 위기상황에 처한 셈이다.

조영복 부산대 경영학과 교수(사회적기업학회장)는 “사회적기업에 관심을 가지고 창업하는 사람들은 많으나 이들을 위한 체계적인 창업교육이나, 경영기법에 대한 지도는 아직 다양화되어 있지 않다”면서 “사회적기업의 미래를 위한 고급인재 양성이 필요하고, 사회적기업을 돕는 선한 자본을 조성하기 위한 사회적 공감대도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재양성·자본투자로 생존율 높인다

국내 몇몇 대기업들은 사회적기업 활성화를 위해 정부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사회적기업 지원에 가장 적극적인 SK그룹은 인재양성에 주력해 사회적기업에서 반복되는 ‘빈곤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SK는 2012년 KAIST와 함께 국내 최초의 사회적기업가 MBA를 개설해 매년 20명의 석사급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부산대와 협약식을 맺어 내년 3월부터 부산대에도 10명의 사회적기업 석사과정 신입생이 들어온다. 사회적기업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와 재무, 회계, 인사, 조직관리, 마케팅 등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혁신적 사업적 기업가들이 뒷받침되어야 사회적기업의 생태계가 탄탄해 질 수 있다는 최태원 회장이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실제 사회적기업 MBA를 통해 전문가가 양성되고 이들이 직접 사회적기업을 창업하고 경영하면서 이 분야 생태계가 탄탄해지는 효과가 발생하고 있다. 내년 KAIST 사회적 기업가 MBA 과정을 졸업하는 허미호(34·여)씨는 “사회적기업을 7년이나 운영하면서도 사실 사회적 기업이 뭔지 잘 몰랐다”며 “MBA에서 2년간 기업회계 등 경영관리 스킬을 전문적으로 배우면서 회사를 질적, 양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허씨는 문화예술콘텐츠 전시를 기획하는 사회적 기업 ‘위누’를 운영하고 있는데 MBA 과정을 거치면서 매출과 영업이익이 2배 가까이 상승했다.

LG전자와 LG화학은 재정지원을 통한 자활을 돕고 있다. 2011년부터 지속해 온 예비사회적기업 지원에 이어, 지난 11월에는 ‘LG 소셜펀드’를 만들고 향후 3년간 60억원을 투입해 사회적기업의 재정, 교육, 생산성 향상 등 전반적인 경영활동을 지원키로 했다. 두 기업은 지난해까지 3년간 친환경 녹색분야의 예비 사회적기업 39곳에 총 60억원을 투입해 재정, 교육, 판로개척, 생산성 향상 등을 중점적으로 지원했다. 이를 통해 지난 3년간 신규 고용 창출은 지원 전에 비해 약 15% 증가했다. 매출액 또한 약 40% 증가해, 매출 증가액만 111억3700만원에 이른다.

이처럼 기업을 중심으로 한 인재양성, 재정지원과 같은 방법을 통해 사회적기업 스스로 해당 사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려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갈수록 넓어지는 생태계

사회적기업의 사업 영역도 확장을 거듭하고 있다. 한화그룹의 식음료 계열사인 한화B&B는 지난달 고용노동부로부터 대기업 계열로서는 처음으로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일자리 제공형’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한화B&B는 전국 36곳에서 델리카페 ‘빈스앤베리즈’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 매장 직원의 40%(80여명)는 한부모가정, 저소득층 등 다양한 취약계층에서 고용하고 있다.

SK가 설립한 사회적 기업 행복전통마을 ‘구름에’는 고택을 활용, 관광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최초의 사회적기업이다. 지난 7월 경북 안동시의 수물 위기에 놓인 고택을 호텔식으로 개조해 최고급 리조트로 변화시켜 수익도 올리고, 전통문화를 보존 계승하는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또 안동지역의 취약계층을 리조트 직원으로 채용, 일자리 창출을 통한 사회안전망 역할을 한다.

‘고급음식’과 ‘착한소비’를 결합한 신개념 사회적기업도 등장했다. 레스토랑 ‘오늘’의 외관은 고급 레스토랑으로 식사 가격은 고급호텔 수준이다. 그러면서도 전통 한정식의 가치를 보존·계승하고 취약계층 청소년을 한식조리사로 양성하는 사회적기업의 가치를 추구한다. 부자들의 열린 지갑이 ‘착한 가치’를 이끌고 사회적 파급효과를 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모델이다.

재계 관계자는 “사회적기업이 2세대에 접어들면서 사회적 가치와 이윤을 결합시킨 새로운 사업모델은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라며 “새로운 영역에 진출한 사회적기업이 잘 성장해 제몫을 해낸다면, 우리사회의 안전망도 훨씬 튼튼하고 견고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