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쿠바 국교정상화 선언] 美는 정치·쿠바는 경제 ‘윈-윈 화해’

입력 2014-12-19 02:10

미국 대외정책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를 늦춰서는 안 된다’는 찬성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 배경에는 중남미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갈수록 줄어드는 데 대한 위기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쿠바 역시 수십 년간 지속된 미국의 경제 봉쇄로 남미 국가들 가운데 가장 빈곤한 나라로 전락한 상태였다. 더 이상 철 지난 이념적 대결로 국민들을 희생시킬 수 없었다. 전문가들은 양국의 이번 관계 정상화로 미국은 남미에서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고, 쿠바는 경제적 실리를 챙겼다고 분석하고 있다.

브루킹스연구소 리처드 파인버그 선임연구원은 17일(현지시간) “미국은 쿠바에 대한 경제봉쇄를 비롯한 여러 이슈들로 인해 갈수록 중남미 국가들로부터 고립되고 있었다”면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조치는 중남미를 포용하고 미국 외교정책을 아메리카 대륙 전체로 확장하는 의미가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쿠바) 봉쇄 정책은 중남미 지역과 전 세계의 파트너 국가들로부터 미국이 오히려 고립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고립’은 2000년 이후 남미 지역을 휩쓴 좌파 정권의 득세와 이에 따른 미국의 영향력 퇴조를 의미한다. 현재 에콰도르 페루 칠레 브라질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의 대통령은 좌파 정당 출신이다. 이들은 미국이 주창한 ‘신자유주의’로 인해 라틴아메리카 국가의 재정과 경제가 파탄났다며 반미 노선과 함께 사회주의적 색채가 강한 경제정책을 채택했다.

2012년에는 중남미 좌파블록이 미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미주기구(OAS) 정상회의 참석을 보이콧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미국의 뒷마당’으로 불려온 중남미에서 미국의 영향력과 위신의 추락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좌파블록은 물론 이 지역 친미 국가들도 ‘쿠바 봉쇄 해제’를 강력히 요구했다. 게다가 중남미 국가뿐 아니라 유럽연합(EU)조차 쿠바와의 관계 개선에 본격 나선 상황이어서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를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dpa통신은 백악관 소식통을 인용해 오바마 대통령이 내년 4월 파나마에서 열리는 OAS 정상회의에 참석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따라서 내년 OAS 회의는 두 정상이 관계 정상화 이후 처음으로 직접 만나 정치·외교 이슈를 놓고 정식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쿠바를 방문할 가능성에도 관심이 쏠린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미·쿠바 국교 정상화 선언이 발표되고 나서 기자들에게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를 방문하는 계획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양국의 관계 정상화로 인한 교역이 재개되면 대미 수출 및 관광객 증가 등으로 인해 쿠바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쿠바는 미국과의 관계 악화 이전에는 남미에서 손꼽히는 부국이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