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너무 오른 육아 물가… 무상보육에도 부모들 허리 휜다

입력 2014-12-19 04:25
11개월 된 아들을 둔 이정은(34)씨는 출산 준비부터 지금까지 육아에만 약 995만원을 썼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이씨의 11개월 치 육아휴직 급여(약 715만원)와 정부에서 주는 양육수당(월 20만원)을 몽땅 쏟아부어도 감당이 안 되는 금액이다. 다달이 분유값과 기저귀값으로만 30만원 이상 빠져나간다. 카시트, 유모차뿐 아니라 내의, 외출복, 장난감, 책, 목욕용품 등에 들어가는 돈도 부담스럽다. 손바닥만한 아이 옷이 어른 옷 한 벌 값에 버금간다. 가장 부담이 컸던 건 산후조리원이었다. 친정어머니는 일을 하고 시어머니는 지방에 살아 어쩔 수 없이 2주 동안 300만원을 감수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생활비 지출 규모도 커졌다. 아이는 더위와 추위에 민감하다 보니 냉난방비가 많이 든다. 부부만 살 때보다 3배 이상 늘었다. 이유식 재료비도 만만찮다. 이런 비용은 육아비 995만원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이씨는 18일 “복직하면 어린이집에 보내고 아이돌보미도 써야 하는데 내 월급이 고스란히 육아에 들어가는 셈”이라며 “일을 계속해도 남는 게 별로 없다면 차라리 육아에 전념하는 게 나을 것 같아 고민”이라고 말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각종 지원책을 쏟아내는 데도 ‘육아물가’의 고공비행은 멈추지 않고 있다. 무상보육 정책으로 어린이집과 유치원 비용이 크게 줄었고, 분유·기저귀·산후조리원은 부가가치세 면세 적용을 받는다. 올해는 값비싼 폐구균 예방접종이 무료로 바뀌었다. 정부는 육아 부담이 한층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현실은 정부 예측을 비웃고 있다. 불경기에 따른 저물가 시대라는데 육아에 있어서만큼은 딴 나라 얘기다.

육아정책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육아물가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육아물가지수는 99.97이다. 지난해보다 0.03% 낮아졌다. 하지만 보고서는 사실상 크게 오른 것으로 분석했다. 예방접종 비용이 95% 이상 깎였는데도 육아물가지수가 소폭 감소한 것은 다른 품목의 물가가 엄청나게 올랐기 때문이다. 육아물가지수는 53개 육아품목의 가격 변동을 3·5·9월마다 조사해 통계청 물가지수 계산 방식대로 산정한 것이다. 지난해부터 조사가 시작됐다.

육아물가를 끌어올린 품목에는 분유(전년 대비 9.39% 상승)와 내의(11.53%) 등 필수품이 포함됐다. 분유는 부가가치세를 면제받는 데도 지난해보다 값이 올라 1통에 평균 2만7887원이나 한다. 내의 한 벌의 평균가는 2만5542원이다. 가장 많이 오른 건 영어학원과 교재·교구다. 월평균 영·유아 영어학원비는 88만8884원으로 지난해(66만7660원)보다 25.65%나 올랐다. 나무블록이나 헝겊 장난감, 그림책 등으로 구성된 교재·교구 가격은 한 세트가 59만8000원에 이른다. 육아에서도 사교육비 부담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보다 값이 떨어진 품목은 예방접종(-95.91%)과 기저귀(-4.78%) 두 가지뿐이다. 예방접종은 무료접종 확대 정책, 기저귀는 면세 적용이 가격을 낮췄다.

피부에 와 닿는 물가 부담은 더 심각하다. 한국은행 방식대로 영·유아 가구 소비심리지수를 산출했더니 주요 품목의 가격평가지수는 110.0∼179.0점, 가계부담지수는 97.3∼180.3점으로 나왔다. 100보다 낮을수록 부담이 적고, 높을수록 부담이 크다. 무상보육이 시행 중인데도 어린이집(115.0점)이나 유치원(133.1점)에 들어가는 추가 비용 탓에 가계부담지수는 100을 크게 웃돈다. 학원(146.3점)과 교재·교구(149.7점)도 마찬가지였다. 둘째를 임신한 백모(36)씨는 “시중의 값비싼 제품을 대체할 만한 싸고 질 좋은 교재·교구가 거의 없다 보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완구류(162.2점)는 가격평가지수가 매우 높게 나왔다. 인기 캐릭터가 그려진 장난감은 일반 장난감보다 1.5배 이상은 비싸다. 보고서를 쓴 최윤영 연구위원은 “육아 용품과 서비스의 시장가격이 소비자물가 상승률보다 훨씬 크게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양육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정부의 각종 육아정책 효과를 반감시키는 결과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정책이 실효성을 거두기 어려워진다”고 우려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