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쿠바가 국교 정상화 교섭을 시작한다고 전격 선언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17일(현지시간) 각각 특별성명을 통해 외교관계 수립을 위한 조치들을 취할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쿠바에 공산정부가 수립된 직후인 1961년부터 지속돼온 적대관계가 반세기 만에 반전(反轉)의 길로 접어든 셈이다.
미국이 내놓은 새로운 쿠바 정책들은 여러 가지다. 수개월 내에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미국 대사관 재개설, 내년 1월 아바나에서 이민협상 개시, 쿠바 여행 확대, 쿠바에 대한 송금 한도 상향 조정, 미국 기관의 쿠바 금융기관 계좌 개설 허용 등 양국 간 금융거래 활성화, 1982년부터 지속돼온 쿠바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검토 등이 포함돼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를 공식 방문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가히 상전벽해(桑田碧海)에 비유할 만한 대형 사건이다.
무엇보다 미국의 대외정책이 획기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쿠바 봉쇄는 민주적이고 안정적인 쿠바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했으며, 오히려 중남미 지역으로부터 미국이 고립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강조했다. 50여년 동안 유지해온 쿠바 봉쇄정책이 잘못됐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나아가 볼리비아를 비롯한 중남미 좌파 정권들에 대해서도 쿠바와 마찬가지로 유화책을 쓸 것으로 전망된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미국이 ‘이념의 시멘트’에 갇혀 있었다고 고백했다. 냉전의 유산을 말끔하게 털어버림으로써 북미와 남미 대륙 전체에 화해와 협력의 기류를 확산시켜 나가겠다는 다짐으로 읽힌다. 머지않아 세계 정치지형이 엄청나게 변화될 것임을 예고한다고 하겠다.
미 공화당 일각에서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 ‘잔인한 독재자에게 어리석은 양보를 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적대관계 청산이라는 큰 흐름을 되돌리기는 역부족일 것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중남미, 아시아,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미국과 쿠바의 관계 정상화 선언을 반기고 있다.
미국 대외정책 변화가 북한으로까지 이어질지 여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오바마 대통령이 임기 말 업적 관리 차원에서 쿠바에 이어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설 것이라는 의견이 있는 반면 핵과 미사일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북·미 관계에는 큰 진전이 없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아직 단언하기 힘든 상태라는 얘기다. 다만 북한 김정은 정권의 위기감이나 소외감이 클 것이란 점은 분명해 보인다. 북한이 ‘형제국가’로 부르는 쿠바가 미국과 덜컥 손을 맞잡았기 때문이다. 김정은 정권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대북 정책의 실패도 시인하라는 억지를 부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오판이다. 쿠바처럼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원한다면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방식으로 핵을 포기하는 절차가 우선돼야 한다. 김정은 정권의 자세 변화가 먼저다.
[사설] 세계 정치지형 바꿀 美·쿠바 국교 정상화 선언
입력 2014-12-19 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