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의미를 알고 있는 지식인들은 지식이 늘어날수록 세상을 뚜렷하게 보게 되고 그럴수록 허무감이 커져. 그래서 나중에 종교에 귀의하는 경우도 많아.” 소설가 복거일이 암 투병 상태에서 행한 인터뷰 중에 던진 말이다. 사실 지식이 많거나 지위가 높거나 부를 많이 갖게 된 상태, 즉 불편함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나이가 제법 든 사람이 하나님을 믿게 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분은 이런 이야기를 더하기도 한다. “과학이 내놓은 증거들이 너무 확실하니 종교에 기대지 못하는 나 같은 불운한 사람에게 절망은 가장 확실한 평정을 줄 수 있어. 나도 남들이 점점 소중해지고 다가오는 죽음이 끔찍하긴 하지만 희망이 없어 기댈 곳도 없다 생각하니 오히려 맘이 편해.”
내가 그분의 마음속 깊이를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외관으로 죽음 앞에 이토록 담대해질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그분을 알아온 사람으로서 평생을 엄격한 관찰자로서 살아온 점을 고려하면 “그분이라면 능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식을 많이 쌓으면 흔들림 없는 절대 진리를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나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담대할 수 있을 만큼 탄탄한 기반을 가질 수 있을까. “그렇다”는 답을 내놓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지식 저런 지식을 수없이 쌓더라도 사람은 구조적으로 허전함, 한 걸음 나아가 허무감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을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젊은 날부터 고국을 떠나서 평생 동안 진리를 찾아 헤맸던 분들조차 인생의 끝자락에는 허무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올해 84세가 되는 철학자 박이문은 최근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평생 노력했지만 인생의 궁극적 의미 같은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말하지만 인생 자체의 의미는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허무주의자입니다. 하지만 매 순간 내게 다가오던 위기를 극복하면서 살려고 했다는 점에서 긍정론자라고 할 수 있지요.”
삶을 긍정할 수도 있고 부정할 수도 있지만 치열하게 학문의 길로 달려가는 것이 참 평화를 주는 것 같지는 않다. 인생의 답을 찾아 평생을 헤맸지만 결국 답을 얻을 수 없었다는 것이 노학자의 고백이다.
평생 죽음 문제를 연구해 왔고 그녀 자신이 죽음에 관해 수많은 저술을 발표한 사람이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이다. 그녀는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라는 메시지를 수없이 전달했지만 막상 뇌출혈이 그녀를 덮치고 9년간에 걸친 긴 투병 생활로부터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그다지 순탄치 않았다고 한다.
지인들의 이야기를 참조하면 죽음에 관한 방대한 지식이 그녀에게 자유로움을 준 것 같지는 않다. 그녀 역시 평범한 사람들처럼 죽음 앞에 막막해 하고 괴로워했던 것 같다.
왜, 지식이나 부나 지위가 삶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일까. 필자 또한 탐구하는 중에 있는 사람이라 단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는 없고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잠정적으로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은 육의 그릇과 혼의 그릇 그리고 영의 그릇으로 구성된 인간은 어느 것 하나가 부실하면 참다운 평화를 누리기가 힘든 그런 존재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부모로부터 학교로부터 그리고 학습으로부터 평생 동안 육과 혼을 단련하는 데 수없이 긴 시간을 투입한다.
‘영의 그릇’이란 어떤 것일까. 50대의 어느 날, 믿음의 길로 들어선 필자는 공부가 더해가면서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체험의 시간이 늘어나면서 이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인간은 영적인 세계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와 영적인 세계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없다면 늘 ‘길 위에 인생’이란 감정으로부터 벗어나기가 힘든 존재라는 사실이다.
초조와 걱정, 염려, 그리고 불안 등과 같은 감정 상태로부터 벗어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참 평화를 얻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참 평화는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이란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노력하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영적인 세계에서 노력은 분명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자주 확인하게 된다.
인생의 어느 순간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그분을 시인하고 믿음의 길로 들어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주어진 은혜가 하나님을 단순히 아는 일에서부터 깊이 알아가는 일 그리고 하나님을 체험하는 일도 모두 은혜에 더 큰 은혜가 더해질 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말씀이 영혼의 그릇에 차고 넘치지 않는 한 인간은 참다운 평화와 행복을 누리기는 힘들 존재이다.
공병호(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공병호의 세상 읽기] 당신의 ‘영의 그릇’은 안녕하십니까
입력 2014-12-20 0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