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종’이라는 이름 뒤에 감춰진 슬픈 가족사. 이 책의 부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종’은 한국의 대표적인 개혁주의 신학자 고(故) 정암 박윤선(1905∼88) 목사다. 보수적인 신앙관을 지닌 정통 칼빈주의를 내세우며 철저한 성경주의자로 살아온 학자요, 79년 신구약 주석을 완간하는 등 20세기 한국교회 거목으로 평가받는 스승이다.
저자는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 김애련 사모의 3남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현재 나이 일흔셋. 서울대 공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70년 미국으로 이민 갔다. 45세 늦은 나이에 덴버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해 석사(구약학), 박사(목회학) 학위를 받았다. 경기도 분당 할렐루야교회에서 성경대학 강사로 활동했고 2008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아버지에 이어 딸도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그런 목사의 딸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아버지의 신앙적 약점과 가정의 내면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일단 책으로 만나는 저자는 상처투성이 인생이다. “내게 아버지는 아픈 상처다. 누르면 아직도 명치끝이 아파오는 통증의 버튼”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책에서 저자는 이런 표현을 많이 썼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공무’에 늘 바빴다.” 어린 딸의 눈에 비친 아버지는 하나님의 종으로 사는 일 외에는 전혀 관심 없었다. 그러다보니 집안 대소사는 모두 어머니 몫이었다. 여섯 자녀를 혼자 키우다시피 했다. 집안 살림을 일으키고자 몸을 소처럼 부렸다. 딸에게 그 ‘대단한’ 아버지는 깊은 상처였다. 반면 자식에게 한없이 인자한 어머니는 더 ‘가련한 분’이었다.
그 어머니가 46세에 교통사고로 짧은 삶을 마감한다. 당시 저자의 나이 열세 살. 아버지는 네덜란드 유학 중이었다. 저자는 그날을 이렇게 떠올렸다. “아버지가 귀국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음주운전을 하여 어머니를 비롯해 수많은 사상자를 낸 미군에게 관대한 처분을 바란다는 탄원서를 제출하는 일이었다. 엄마를 잃고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당신의 자식들을 품에 안아주지도 않았을 뿐더러 따뜻한 위로 한 마디 없었던 그때, 아버지는 당신이 선행이라 여긴 그 일을 최우선 순위로 삼았다. 그리고 이튿날부터 신학교에 출근하여 ‘하나님의 종’으로서 ‘공무’에 전념했다. 남겨진 가족을 위한 그 어떠한 것도 하지 않으셨다.”(69쪽) 심지어 엄마를 찾아 보채는 세 살짜리 막내조차 한 번 안아주지 않았고, 여섯 달쯤 뒤에 저자는 새어머니를 만났다고 한다.
책에는 믿기지 않는 다소 충격적인 기록들이 더 나온다. 어쨌든 변하지 않는 건 목사의 딸인 저자가 오랜 시간 ‘절망’ 속에서 살았다는 거다. 그렇다면 이 가정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저자는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 아버지의 약점을 통해 그 부분을 짚었다. 이는 곧 한국교회의 병폐인 유교적 권위주의, 샤머니즘적 기복주의, 왜곡된 복음의 율법주의적 요소들이다.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는 어머니 위에 군림했고, 자녀들에겐 복종을 강요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유교의 군신관계로 이해하며 그분께만 죽기까지 ‘충성’을 다한 아버지는 그래서 이웃들과 은혜를 같이 누리는 데는 무감각했다. 영적인 것만 중요시하다보니 아버지는 삶에서 신앙의 일치를 이뤄내지 못했다. 즉 그의 신앙에는 사랑이 없었다는 거다(245쪽).
저자 역시 미국에서 신앙의 멘토들을 만나고 신학 공부를 하며 점차 사랑에 눈 떴다. 46세에 아버지의 신앙체계에서 비로소 벗어나 이웃과 교제하고 베풀고 나누면서 복음의 전정한 의미로서의 사랑을 깨달았다. 이는 곧 92∼95년 서울 난지도의 반석교회에서 주부성경공부 등을 인도하고, 96년부터 2000년까지 경기도 포천에 있는 범죄소년 교화소 ‘해 뜨는 마을’에서 상담하며 말씀을 전하는 귀한 사역으로 열매 맺었다.
이 책은 출간 1주일 만에 재판을 찍는 등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런 만큼 인터넷에서 책에 대한 반응도 다양하다. 일부에선 굳이 딸이 나서서 존경받는 어른의 약점을 들춰낼 필요가 있느냐고 공격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김상복(할렐루야교회) 원로목사가 추천의 글에서 ‘그럼에도 책이 필요한 이유’를 언급했다. “책을 읽으면 무척이나 가슴이 아픕니다. 잘 믿어지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 숨겨져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자신을 철저히 살펴 회개하고, 깨닫고, 변화되어야 할 현실을 그대로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화려한 목회자의 삶 이면에 숨겨진 아픔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치유와 회복으로 마무리되는 복음의 위력을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솔직한 고백을 통해 한국의 모든 목회자들과 그 가족에게 변화와 치유와 회복의 물결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책은 저자의 고백록이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잘못된 신앙의 유산을 벗어나 결국엔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되는 치유 과정을 담은 영적 순례기다. 좀더 성숙한 신앙의 눈으로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책과 영성] 짙은 아버지의 그늘… 복음으로 아문 그 상처
입력 2014-12-20 0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