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정수영 (3) 첫 성경공부 다음날 “세상이 왜 이리 아름답지?”

입력 2014-12-19 02:30
세상에 성경공부 시간만큼 행복한 시간이 또 있을까. 간호사들과 성경공부를 하고 있는 정수영 박사.

“여보, 고등학교 동창이 성경공부 모임에 초대했는데 같이 가시면 좋겠는데요.”

아내의 이번 제안에도 고개를 돌리며 “생각이 없다”고 거절했지만 이미 손에는 자동차 키가 들려 있었다. 아내를 그 집에 데려다주러 나섰고 도착하니 30여명이 모였는데 식사를 하는지 된장찌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내에게 끝나면 데리러 오겠다하고 집을 나왔는데 다시 우리 집에 갔다가 돌아오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마침 구멍가게가 보여서 캔맥주와 담배를 사서 그 집 마당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아내를 기다렸다. 밤 10시쯤 모임이 끝났는지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사람들을 배웅하러 나온 주인이 나를 보고는 “잠깐 들어오셔서 차라도 한잔 하고 가세요”라고 하기에 오랜만에 동창을 만난 아내의 입장을 생각해서 그냥 들어갔다.

그는 정말 달변이었다. 성경의 이런 저런 내용들을 설명하더니 다니엘서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이 예언서는 수천 년 전에 기록된 것인데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한 것들이 그동안 인류 역사에서 그대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게 흘러갔다. 새벽 4시가 넘도록 성경 얘기는 계속됐다. 그는 성경의 여기저기를 찾으며 설명해 나가더니 마지막으로 요한복음 5장 25절을 같이 읽자고 했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내가 그를 따라 이 말씀을 읽자 그는 뜻을 해석해 주었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있지만 그들 중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죽은 자입니다. 오늘 내가 전한 이 예수의 말씀을 듣고 진정으로 주님을 영접하면 주님과 함께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이해가 되시나요?”

“글쎄요….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같은데요.”

“그러면 저와 함께 기도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그를 따라 기도한 후 그 집을 나서는데 어쩐지 내가 그 집에 들어올 때와는 달라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안개가 자욱한 뉴욕의 새벽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오는데 운전대를 잡은 내 손이 떨렸다. 어쩌면 이것이 그동안 내가 말한 철학적인 구원이니 시적인 구원이니 하는 것들의 대답이 될지도 모른다고 나는 그 밤에 생각했다.

당시 우리가 살던 뉴욕 자마이카라는 동네는 아주 험악한 곳이었다. 공원에는 늘 주정뱅이와 홈리스들, 마약에 찌든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어서 매우 위험해 보였기 때문에 한 번도 밖을 돌아다닌 적이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날 아침, 밤새 성경 말씀을 들은 뒤 집에 돌아와 두 시간 눈을 붙이고 병원에 출근하려고 아파트 문을 여는 순간, 그 공원이 한눈에 들어오면서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다. 나무들이 살아서 춤을 추는 것 같았고 공원을 이고 있는 하늘도 무척 아름다웠다. 나는 갑자기 딴 세상에 온 거처럼 어리둥절했다. 그 순간 어젯밤 그 집에서 읽었던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 5:25) 그 순간 눈이 축축해지면서 ‘지금까지 내 눈을 새롭게 뜨게 하시고 내 마음 깊은 곳을 만지시는 분이 있구나’하는 깨달음과 더불어 이루 말할 수 없는 평화와 기쁨이 내 메마른 가슴에 스며들었다. 성령께서 내게 오셔서 초자연적으로 임재하심을 체험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공원이 집 앞에 있다는 것을 몰랐다니! 내가 거듭난 생명이 되다니! 내 가슴은 터질 듯 부풀어올랐다. 그 옛날 어릴 적 기대던 어머니 품속처럼 따뜻함과 평안함이 넘쳐났다.

나는 그날 아침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를 잃었기에 지금까지 아버지 사랑이란 걸 모르던 내가 아니던가. 그리고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며 내 삶의 근원에는 죄가 있는 것도 알게 됐다.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