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신달자] 부부모임

입력 2014-12-19 02:20

전화소리가 아침잠을 깨운다. 집전화가 울리는 것을 보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미진이다. 목소리가 잔뜩 화가 나 있다. 어제는 밝은 목소리로 부부모임이 있어 나에게 못 온다는 연락을 하지 않았는가. 어제보다 더 밝아 있어야 할 그의 목소리는 어림잡아 화가 100도는 올라 있는 것 같다. 뻔하다. 부부싸움을 한 것이다.

나는 “무슨 일이야?”가 아니라 “왜? 싸웠어?”라고 물었다. 질문이 나가기도 전에 그는 높은 억양으로 “별꼴이야. 지금 나이가 몇인데”에서 진저리가 난다며 남편을 몰아 세웠다. 알 것 같다. 그의 남편은 술버릇이 좀 있다. 아마도 여럿 있는 데서 실수를 좀 했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 실수가 좀 황당했다. 남편이 취기가 돌면서 최근 들어 자기 부부는 딴방을 사용한다고 떠들면서 혼자 자니까 그 세상도 편하고 좋더라고 마누라 코고는 걸 보는 것보다 아주 편하고 안락하다고 그것도 너무 강조하더라는 것이다. 미진이 표정이 굳어 가고 분위기가 이상하다 싶으니 친구들이 야야 너 같은 마누라 삼대가 공들여야 얻어 걸리는 복이야 어쩌구 하니까 미진이는 더욱 화가 나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그 상황은 짐작이 간다. 미진이는 늘 남편의 술버릇으로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그런데 다른 것도 아니고 아주 남들에게 숨겼으면 하는 안방 이야기를 그런 분위기에서 터놓는 것을 용서할 수 없었다는 거다. 더욱이 따로 자는 게 그렇게 편하고 좋았더란 말인가. 미진이는 벌벌 떨고 있는 것 같다. 미진이 말은 남편이 감기가 심해 저항력이 약한 미진이가 다른 방에서 자기 며칠 만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편하다는 걸 강조한 까닭은 뭘까.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미진이에게 나는 말했다. 감기 걸렸다고 베개 들고 나가는 네가 섭섭했나보다. 남자들은 아이라고 하지 않던가. 강하다고 자처하는 남자들 가슴엔 한번도 울지 못한 울음이 있다더라. 남자들도 폐경기가 있거든. 네가 엄마 아니냐 마누라 없이 자는 것이 아마 상처였다고 생각해주렴. 부부는 서로 아빠였다가 엄마였다가 그러는 거다. ‘님아…’라는 영화를 보러 가거라, 같이 말이야. 사랑이란 서로 쓰다듬는 거라는 것을 보게 될 거야.

신달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