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쿠바에서 간첩 혐의를 받고 수감됐던 미국인 앨런 그로스(65)가 풀려났다. 1961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외교가 단절됐던 미국과 쿠바는 이날 외교 정상화를 위한 대화를 시작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새로운 관계의 막을 올리게 됐다.
미국의 CNN 등은 그로스가 쿠바에서 석방돼 귀국길에 올랐다고 17일(현지시간) 오전 일제히 보도했다. 정부 고위관리는 “그로스의 ‘인도주의적’ 석방은 지난 1년 동안 진행된 미국과 쿠바 사이의 막후 협상을 통해 이뤄졌다”면서 “그로스의 석방이 미국과 쿠바 사이의 관계 개선에 단초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쿠바는 그로스와 함께 20년 이상 쿠바에 수감돼 있던 미국 측 정보요원도 석방시켰다. 미 정부는 보안상 이유로 그의 신원을 밝히지는 않았다. 미국도 2001년 간첩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고 플로리다주 교도소에 수감 중인 3명의 쿠바 정보요원을 풀어줬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대통령은 이날 정오를 기해 양측에 수감됐던 인사들의 석방 사실과 함께 양국의 외교관계 회복 방안에 대해 발표했다.
미국 관리와 의원들에 따르면 관계회복 방안에는 쿠바 수도 아바나에 미대사관 개설은 물론 금융거래 재개, 포괄적 수출입 허가 등 다양한 사업 협력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인의 쿠바 여행도 가능해지며 여행객들이 쿠바에서 주류와 담배를 포함해 400달러 이하의 제품을 들여올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대쿠바 제재를 해제하기 위한 선제 조치로 쿠바를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쿠바는 자국민들의 인터넷 이용을 허용하고, 국제적십자위원회 및 유엔 인권위원회의 지원을 받아들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쿠바는 52명의 정치범을 석방시키기로 했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의 이런 움직임은 단지 카스트로 정권을 도와주려는 게 아니라 쿠바의 개혁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쿠바의 변화를 위해서는 다른 접근 방식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대인 출신으로 미 국무부 대외원조기관인 국제개발처(USAID)의 하도급업체 직원이던 그로스는 2009년 쿠바 현지의 유대인 단체에 인터넷 장비를 설치하려다가 체포돼 15년형을 선고받았다. 미 의회는 그로스의 석방을 위해 쿠바 정부와 계속 협상을 이어왔으나 지난 8월 그로스가 건강 악화로 변호인 스콧 길버트를 통해 “더 연명하기 어려운 건강상태이며 감옥에서의 의미 없는 삶을 자포자기했다”면서 가족들에게 미리 사별을 고하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주 “쿠바와 다양한 채널을 통해 그로스의 석방에 관해 협상하고 있다”고 공식 인정한 바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쿠바의 인권문제 개선과 더불어 쿠바와 교류협력을 넓히는 방향으로 관계 정상화를 추진해 왔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美·쿠바 외교 관계 정상화 닻 올렸다
입력 2014-12-18 0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