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소설에 직접 말하지 않은 사회의식을 담다

입력 2014-12-19 03:32
원로작가 조정래씨의 강연과 대담, 기고 등이 ‘조정래의 시선’으로 엮여져 나왔다. 작가는 베스트셀러 ‘정글만리’가 민족주의라는 상업성에 기댄 게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 “서양의 음모론적 주장을 그대로 따른 몰상식”이라고 반박한다.해냄 제공
소설가 조정래(71)는 대하소설 ‘태백산맥’에서 분단비극을, ‘아리랑’에서 식민지의 통한을, 그리고 ‘한강’을 통해 기적을 낳은 피땀 어린 세월을 직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처럼 대하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 시대적 서사를 지속적으로 그려왔던 작가에게는 ‘문학과 역사, 그리고 사회적인 긴급한 문제에 한해 발언을 한다’는 원칙이 있다. 소설이 아닌 신문 칼럼을 쓰거나 강연을 하고 방송 출연도 마다하지 않았던 건 그런 이유다.

‘조정래의 시선’은 이런 원칙 속에서 소설에 직접 말하지 않은 문학론, 인생관, 사회의식을 담은 책이다. 각종 신문에 기고한 글, 문예지에 실린 대담 형식의 글, 플라톤 아카데미 등에서 했던 강연 내용이 실려 있다.

그가 최근 들어 폭포수처럼 많은 사회적 발언을 쏟아낸 계기는 지난해 화제를 몰고 왔던 ‘정글만리’의 출간이다. 각종 대담과 인터뷰에 불려 다니며 작가적 열정과 시대적 고민, 비판에 대한 항변을 쏟아냈다. ‘정글만리’는 출간 8개월 만에 100쇄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었다.

놀랍게도 이 책은 1990년부터 20년 동안 준비해 온 결과라고 한다.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10주년을 맞은 중국식 자본주의가 12억 인구를 배부르게 한 현실을 목도한 그는 ‘20, 30년이 지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건 중대한 문제다!’라는 깨달음을 얻고 소설을 구상했다. 소설가야말로 어떤 사회학자, 역사학자보다 시대적 촉수를 예리하게 내미는 사람인 것이다.

그의 소설은 또한 발로 뛴 현장 취재의 산물이다. “책이나 신문, 잡지 같은 것을 아무리 많이 읽어 자료를 모아도 현장에 가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수두룩하다”는 그는 ‘BMW 뒷자리에서 울지언정 자전거 뒷자리에선 웃지 않겠다’(돈이면 최고) 등의 중국인 의식을 보여주는 생생한 현지 표현을 얻을 수 있었다. ‘정글만리’가 G2로 발돋움한 중국의 역동적 변화를 보여주면서도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도시들과 싼 목숨으로 취급받는 농민공들의 모습 등 경제개발의 어두운 이면을 펄떡이는 생선처럼 그려낼 수 있었던 힘도 여기서 나온다.

민족주의라는 상업성에 기댄 게 아니냐는 비판이 대해서도 항변한다. 그는 “민족주의에 대한 무조건적 거부와 매도는 문제가 있다. 그것이야말로 서양의 힘센 나라들의 음모적 주장을 앵무새처럼 그대로 따라야 하는 몰상식이고 무책임”이라고 잘라 말한다. 또 거대서사를 유물처럼 취급하는 문단의 태도에 대해서도 “그런 생각들의 근원이 서양 중심주의나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열등감에서 비롯되고 있다는데서 역겨움을 느낀다”고 원색적으로 비판한다.

중국에 대해 한국이 갖는 힘을 중국말을 거침없이 잘하는 ‘상사맨’의 성실성에서 찾는다거나, 중국을 ‘짝퉁 천국’으로 매도하는 한국인의 태도를 ‘자대(自大) 즉, 잘난 척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경고하는 대목에서는 중국 전문가로서의 면모가 느껴진다.

이밖에 영어 사교육 열풍, 인문학에 대한 경시 등의 사회문제 뿐 아니라 노무현정부와 박근혜정부에 대한 비판,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해 한반도를 영세중립국화해야 한다는 주장 등 거침없는 정치적 발언도 만날 수 있다.

전남 순천 출신으로 소설 무대가 된 호남 사람으로서의 자긍심과 사무침의 감정도 가감 없이 토로한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