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해 대학생들이 모금 활동을 벌여 ‘평화의 소녀상’을 만들었다. 미국 글린데일 등 국내외 곳곳에 소녀상이 세워졌지만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들기는 처음이다. 학생들은 이 동상을 이화여대 학생문화관 앞에 두려 했다. 하지만 학교 측이 난색을 표해 학교 밖 공원으로 터를 옮기게 됐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평화의 소녀상은 2011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처음 등장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인다. 당시 1000번째 수요집회를 맞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김운성(50) 작가가 동상을 세웠다.
이를 본뜬 소녀상을 만들어보자는 게 출발이었다. 지난 2월 수요집회에 참가했던 각 대학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동아리들이 뜻을 모았다. 이화여대 총학생회가 먼저 말을 꺼냈고 이화여대 동아리인 ‘이화나비’가 동참했다. 부산대 연세대 총학생회를 비롯해 여러 대학 동아리가 참여해 ‘평화나비 네트워크’라는 연합 동아리를 결성하고 ‘대학생이 세우는 평화의 소녀상 건립위원회’도 출범했다.
제작비를 마련하려고 지난 3월 평화나비 콘서트를 열었고 각종 페스티벌 등 캠페인도 했다. 모금 운동으로 어렵사리 750만원을 모았다. 그렇게 만든 소녀상을 이화여대에 설치키로 한 건 위안부 피해 실상을 처음 세상에 알린 윤정옥(89) 전 이화여대 영문과 교수가 재직했던 곳이어서였다. 최근 중국인 관광객이 자주 찾아 일본군 만행을 널리 알리기에도 좋다고 생각했다.
이 소녀상은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과 조금 다르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두 팔을 활짝 펼친 소녀의 등에 나비 날개가 달려 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나비’로 상징되는 대학생들이 함께하겠다는 의미가 담겼다. 크기는 가로 1.8m, 세로 1.6m.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을 만든 김운성 작가와 김서경(49) 작가가 제작을 맡았다.
그러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일이 틀어졌다. 이화여대 측이 소녀상 설치를 반대했다. 평화나비 네트워크 대표인 김샘(23·숙명여대)씨는 17일 “이화여대 측에 소녀상 건립을 위한 공문을 보냈는데 ‘이화여대 캠퍼스에 있는 동상들은 졸업자나 스승들의 동상’이라며 ‘소녀상이 들어오려면 구성원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사실상 반대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그는 “소녀상 건립을 함께 추진한 이화여대 학생들과 함께 서명운동을 벌일까도 했지만 학교 측 반대가 완강해 결국 다른 방법을 찾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화여대 측은 “학교에서 거부했다기보다 ‘교내 구성원 의견수렴 절차를 밟아오는 게 좋겠다’고 말했던 것”이라며 “일부 학생단체 의견만으로 동상 건립을 수용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소녀상이 설 자리를 찾아 헤맸다. 이화여대 정문 앞에 세워보려고도 했지만 거리 리모델링 계획이 잡혀 있어 무산됐다. 결국 서대문구청의 협조를 얻어 대현문화공원에 터를 만들기로 했다. 지하철 2호선 이화여대역 2번 출구에서 30여m 떨어진 곳이다. 난관 끝에 학생들이 만든 소녀상은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단독] 평화의 소녀상은 왜 학교 밖 나앉게 됐나
입력 2014-12-18 0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