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發 금융위기 고조] 强달러·低유가 강타… 신흥국 외환위기 高위험

입력 2014-12-18 02:36 수정 2014-12-18 09:16

러시아발 금융위기가 일부 신흥국 시장으로 전염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러시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가는 데다 저유가까지 겹치면서 도무지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미국과 중국 간 경제 균형마저 흐트러지면서 신흥국 외환위기 가능성까지 대두되고 있다.

러시아 금융시장이 공황상태에 빠지면서 신흥국 금융시장도 16일(현지시간) 함께 출렁였다. 브라질 헤알화 가치는 5거래일 연속 폭락해 달러당 2.736헤알로 마감했다. 헤알화 환율이 달러당 2.73헤알을 돌파한 것은 2005년 3월 25일 이후 9년 9개월 만에 처음이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도 달러당 1만2689루피아까지 떨어져 1998년 8월 이후 최저 수준을 보였다. 터키 리라화 가치도 장중 달러당 2.41리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신흥국 금융시장이 요동친 건 러시아 루블화 가치가 대폭락하면서 비롯됐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싸고 러시아에 각종 경제 제재를 가한 것도 러시아가 위기에 빠진 큰 요인이다. 미국이 러시아 국영기업을 추가 제재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이는 것도 러시아가 외환위기를 달래지 못하고 있는 원인이다. 미국은 러시아의 숨통을 더욱 죄고 있어 위기는 한층 고조될 전망이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주 안에 의회가 통과시킨 ‘우크라이나 자유 지원 법안’에 서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법안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제공 등 지원을 확대하고 러시아가 추가 도발할 경우 제재를 강화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저유가까지 겹치면서 신흥국 외환위기 가능성을 부추기고 있다. 저유가는 러시아뿐 아니라 베네수엘라 같은 원유 수출국의 채무상환 불이행(디폴트) 우려까지 낳고 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내년 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장중 2009년 5월 이후 최저치인 배럴당 53.60달러까지 밀렸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균형 와해가 러시아발 금융위기를 신흥국 전반으로 확산시켰다는 분석도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날 신흥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달러 강세, 유가 급락의 배경이 미국과 중국의 뒤바뀐 경기 회복세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2008년 금융위기의 시발이었던 미국은 최근 경제가 눈에 띄게 개선되고 있다. 내년 미국의 성장률은 10년 만에 최고인 2.9%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8년 만에 처음으로 금리 인상을 준비 중이다. 반면 중국은 고성장을 마감한 뒤 부동산 시장은 얼어붙었고 제조업 경기도 악화되는 등 정반대 행보를 걷고 있다. 중국의 석유 수요가 줄면서 세계 원자재 값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미국이 ‘나 홀로’ 잘나가면서 달러 가치가 올랐고 신흥국 통화는 폭락해 해외 자금이 미국으로 쏠리고 있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중국 경제와 밀접하게 연결된 나라들,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국가를 고위험군으로 꼽았다.

러시아의 위기가 신흥국 간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삼성증권은 “국제유가 하락으로 인해 원자재 수출 비중이 크고 경제 개혁이 미진한 신흥국은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이 커지고 있지만 한국 대만 말레이시아 등 에너지 수입 비중이 높은 국가는 경상 흑자가 확대되는 등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세종=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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