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고 들어서자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사무실 곳곳에서 연신 전화벨이 울렸다. 자원봉사자나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저마다 무언가를 하느라 분주했다. 말을 걸기가 조심스러울 정도였다. 16일 방문한 이곳은 서울 종로구 신문로 구세군회관 6층에 있는 한국구세군의 자선냄비본부 사무실. 자선냄비 거리모금 캠페인을 지휘하는 구세군의 ‘컨트롤타워’였다. 올해 자선냄비 거리모금은 지난 1일 시작돼 현재 전국 360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올겨울 구세군의 ‘빨간 냄비’엔 기부금과 함께 어떤 사연들이 답지하고 있을까. 구세군 배분관리실장인 이은경 사관은 자신의 컴퓨터에 저장된 사진들을 한 장씩 보여주었다. 독특한 문구를 적은 기부금 봉투나 이색 기부 물품들을 촬영해 놓은 사진이었다. 사진만으로도 소외된 이들에게 온정을 전하려는 기부자들의 이웃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자선냄비에 담긴 애틋한 스토리=기부자들이 자선냄비에 ‘돈’만 넣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냄비를 열어 보면 특이한 물건도 수두룩하다. 귀금속이나 문화상품권이 대표적이다.
지난 5일 서울 종로3가역 자선냄비를 개봉했을 땐 목걸이 한 점이 나왔다. 기부자는 흰색 A4 종이로 목걸이를 포장해 냄비에 넣었다. 이 사관은 “금으로 보이는 치아 보철물이나 반지를 넣은 사례도 있다. 진짜 금과 보석인지 확인하기 위해 귀금속은 추후 감정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기부금 봉투에 적힌 글귀만으로도 애틋함을 느낄 수 있는 사례도 많았다. 한 할머니는 지난 11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에 있는 자선냄비에 기부금 봉투를 넣었는데 봉투 겉면엔 ‘엄마 없는 아가들에게’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지민 지우 호준 할머니’라고 썼다. 봉투에는 꼬깃꼬깃한 지폐로 81만원이 들어 있었다.
지난 14일 경기도 성남 야탑역 자선냄비에서는 100만원이 든 기부금 봉투가 발견됐다. 서울 서문교회에 다니는 어르신들의 기부금이었다. 이들은 봉투에 ‘서문교회 장수대학 어르신들이 매월 첫째 주일 첫 예배를 통해 드려진 헌금을 모아서 구세군 자선냄비에 전달합니다’라고 썼다.
미취학 코흘리개들이 십시일반 모은 기부금도 있었다. 지난 15일 서울 혜화역 자선냄비에는 ‘CJ 키즈빌 어린이집’ 소속 어린이들 명의의 봉투 2개가 접수됐다. 봉투 중 하나에는 ‘방울새반 친구들이 쿠키를 팔아 모은 돈이에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매년 그러하듯 자선냄비에 거액을 기부하는 사람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 13일 6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은 서울 명동 자선냄비에 1억원짜리 수표와 함께 편지 한 장을 넣었다. 봉투에 적힌 기부자 이름은 ‘신월동 주민’. 구세군 관계자는 “‘신월동 주민’이라고 밝힌 이분은 2011년부터 해마다 자선냄비에 1억여원을 기부하고 있는데 편지를 동봉한 건 올해가 처음”이라고 전했다.
‘신월동 주민’은 편지에 “저에게 도움을 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며 “아버지 뜻을 이해해주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위들 딸들에게 칭찬을 아낌없이 해주고 싶다”고 썼다. 이어 “새해에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고 많은 발전이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기원해본다”며 덕담을 건넸다.
◇“자선냄비 모금, 한국교회의 관심 절실”=한국구세군은 지난해부터 일선 교회들과 공동으로 거리모금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전국 10개 교회 성도들이 빨간색 구세군 옷을 입고 거리모금 자원봉사에 뛰어들었으며 올해는 20개 교회 성도들이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
자선냄비 거리모금은 오는 31일까지 진행된다. 올해 목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 모금액보다 5억원 늘어난 65억원이다. 이수근 구세군 사무총장은 “현재까지 20여억원을 모금했다”며 “이 정도 ‘속도’는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전했다. 그는 “자선냄비는 이 세상에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운동”이라며 “한국의 모든 교회가 자선냄비 캠페인에 적극 동참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4년째 1억 봉투엔 “국민들 건강·행복했으면”… 자선냄비에 담긴 아름다운 사연들
입력 2014-12-18 0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