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정부는 에너지 정책을 물가안정의 수단으로 여겼다. 1982년 이후 원자력발전소가 잇따라 완공되면서 낮은 원가로 풍부한 전기 공급이 가능해졌다. 원전은 한 번 가동에 들어가면 가동률을 낮추는 게 매우 비효율적이다. 이런 공급의 경직성과 물가안정의 필요성이 결합하면서 전기요금은 1980년대에만 10차례나 인하됐다. 그 덕분에 유례가 드문 물가안정을 누린 것은 전두환정부의 치적으로 꼽혔지만 세계 1, 2위를 다투는 우리나라 경제의 전기 과소비 체질은 이때부터 형성됐다.
명목전기요금은 80년에 kwH당 50.88원에서 2000년 74.05원으로 46.7% 상승했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폭(2.6배)을 감안하면 실제 전기요금은 절반 가까이 인하된 셈이다. 전기는 다른 에너지를 태워서 만드는 제2차 에너지이자 고급 에너지다. 정부는 이후 전기를 계속 싸게 공급함으로써 전기가 심지어 난방용 수요에서까지 석유제품을 대체하기에 이르렀다. 에너지 효율 측면에서는 그야말로 멍청한 짓이다. 값싼 전기는 국제수지를 악화시키고 에너지 낭비 구조를 고착화했다.
지금 국제유가가 수직 낙하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기와 가스 요금을 낮추라고 주문했다. 가계 주름살이 조금이라고 펴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그렇지만 전기 원가에서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발전연료는 원자력, 석탄, LNG, 벙커C유 등 발전단가가 싼 연료부터 우선순위에 따라 동원된다. 따라서 싸졌다고는 해도 아직까지 석탄보다 더 비싼 LNG와 벙커C유는 발전연료로서 뒷전이다.
또한 지금은 물가안정이 절실한 때도 아니다. 전기요금을 인하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근년의 비교적 가파른 전기요금 인상과 배출권거래제 시행 등으로 산업계가 절전 필요성을 체감하기 시작했는데 다시 과거로 돌아가자는 시그널(신호)을 주면 곤란하다.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산업의 부흥, 여러 가지 절전산업과 관련된 일자리 창출에도 찬물을 끼얹을 것이다. 에너지 가격을 포함한 에너지 정책을 다른 정책의 수단으로 삼으면 곤란하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한마당-임항] 전기요금 인하 논란
입력 2014-12-18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