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FA 마피아’ 비리 의혹 조사 보고서 원본 공개 신청 묵살

입력 2014-12-18 02:42

제프 블래터(78·스위스)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2008년 5월 호주 시드니 총회에서 엉뚱한 아이디어를 내놨다. “2018, 2022 월드컵 개최지를 동시에 결정하자.” 관행을 깬 것이다. FIFA는 2004년 집행위에서 2010년 월드컵 개최국으로 남아공을 선택했고 2007년 집행위에서 단독 입후보했던 브라질을 2014년 월드컵 개최국으로 통과시켰다. 그런데 2010년 12월 열린 FIFA 집행위에선 결국 러시아와 카타르가 각각 2018년과 2022년 월드컵 개최국으로 결정됐다.

블래터 회장이 ‘개최국 이중지정’을 밀어붙인 이유는 뭘까? 그것도 6년 전이 아닌 8년과 12년 전에. 그는 “이렇게 하면 개최국과 스폰서는 더 안정적으로 대회를 준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과연 그럴까? 잭 워너 전 FIFA 부회장은 “뭐긴 뭐겠어? 돈이지!”하고 코웃음을 쳤다.

월드컵 개최지 선정은 올림픽 개최지 선정보다 더 악취가 진동한다. 올림픽을 유치하려면 110명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 중 과반수를 설득해야 한다. 하지만 월드컵은 13명만 구워삶으면 된다. 투표하는 집행위원이 고작 24명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주목하면 2022년 월드컵 유치권이 어떻게 ‘열사의 나라’ 카타르에 돌아갔는지 이해할 수 있다.

2018년, 2022년 월드컵 개최지 선정을 둘러싸고 각종 비리 의혹이 제기되자 FIFA는 윤리위원회 수석조사관인 미국 출신 변호사 마이클 가르시아에게 조사를 맡겼다. 가르시아는 최근 2년간 75명 이상의 관련자 인터뷰와 각종 자료를 조사한 결과 개최지 선정에 비리가 있었다는 내용의 430쪽 분량의 보고서를 작성해 윤리위에 제출했다. 그러나 윤리위는 이를 42쪽 분량으로 압축·발표했다.

FIFA 항소위원회는 17일(한국시간) 가르시아가 보고서의 완전 공개를 요구한 이의 신청을 기각했다고 밝혔다. FIFA 스스로 한 명의 보스가 군림하는 ‘마피아 패밀리’와 같은 조직임을 인정한 셈이다. 가르시아는 자신의 보고서가 10분의 1로 줄어 발표되면서 결론이 왜곡됐다고 이의를 제기해왔다.

이처럼 FIFA는 흥행(돈)을 위해선 심판과 집행위원 매수, 스파이 활용, 도청, 협박, 폭로 등을 서슴지 않는다. 그 중심에 블래터 회장이 있다는 지적이 많다. 블래터는 1998년 6월 8일 프랑스월드컵 개막 직전 선출됐다.

FIFA 비리를 파헤쳐 온 독일기자 토마스 키스트너는 ‘피파(FIFA) 마피아’라는 책을 통해 “회장 선거 전날 밤 아프리카 위원들이 묵고 있던 파리의 메르디앙호텔에선 두툼한 봉투가 어지럽게 오갔다. 어떤 위원은 호텔을 떠나면서 돈 봉투 챙기는 것을 깜빡 잊어버리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선거가 끝난 뒤 아프리카 국가들의 축구협회 회장 대여섯 명은 블래터에 80대 111로 크게 패한 레나르트 요한손(스웨덴)에게 머리를 숙이며 동료들의 부끄러운 행동을 대신 사과했다.

2011년 4선에 성공한 블래터 회장은 지난 9월 5선 도전 의사를 밝혔다. 4선 출마 당시 마지막 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던 그는 4년 임기 종료(2015년 6월)가 다가오자 태도를 바꿨다. FIFA 차기 회장 선거는 내년 5월 열리는 총회에서 치러진다.

블래터 회장의 연봉이 얼마인지는 본인 외에 아무도 모른다. 그는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으로 벌어들이는 약 40억 유로(5조4000억원)의 지출 명세도 밝힌 적이 없다. 더욱이 FIFA가 벌이는 모든 사업의 결재 권한을 자신만 행사하도록 못을 박았다. 블래터는 말한다. “우리는 패밀리다. 패밀리는 모든 문제를 오로지 패밀리 안에서 해결한다.”

전 세계적으로 FIFA가 ‘마피아 패밀리’에서 탈피해 투명하고 건강한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