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충남 금산에 ‘○○사슴농장 홍보관’이란 행사장이 문을 열었다. 가족용 체험학습장을 연상시키는 이곳에는 지난 3월까지 8개월간 전국에서 5만명 넘게 노인이 몰려왔다. 박근혜 대통령의 어머니 육영수 여사 생가 관광을 무료로 시켜준다는 말에 “바람 쐴 겸 가보자”며 온 사람들이었다. 생판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효도관광을 시켜주다니, 세상에 이런 공짜가 있을 리 만무했다.
업자들의 목적은 건강식품 판매였다. 행사장을 가득 채운 노인들 앞에 녹용 제품을 내놓고 “이걸 먹으면 고혈압 당뇨는 물론 각종 암이 낫는다”고 소개했다. 말만 들으면 ‘만병통치약’이었다. 90g짜리 50봉이 33만원. 큰돈이지만 노인들은 “어머니” “아버지” 하며 자식보다 살갑게 대해주는 업자들에게 기꺼이 쌈짓돈을 풀었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제품의 시가는 2만원 정도였다. 16배 이상 비싸게 판 것이다. 중국산 저가 한약재로 만들어 당연히 암 치료 효과 같은 건 없었다. 경찰은 업자 25명을 사기와 허위·과장광고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5457명에게 약 15억8200만원어치를 팔았다.
경찰청은 올 1월부터 지난달까지 건강식품 ‘떴다방’ 등 허위·과장광고 사범 1326명을 붙잡아 13명을 구속했다고 16일 밝혔다. 확인된 판매액은 3199억원, 피해자는 75만9369명이나 됐다. 1인당 평균 42만원씩 사기당한 셈이다. 팔린 제품의 평균 원가는 8만6000원으로 판매가의 5분의 1 수준이었다.
업자들은 무료 공연이나 관광, 싸구려 경품을 미끼로 노인들을 유인했다. 홍보관에 사람이 모이면 의료 전문가 행세를 하며 주로 건강식품을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속여 팔았다. 전북 정읍에서 검거된 A씨는 노인들에게 자신이 프로폴리스 제품을 직접 개발한 유명 의사라고 소개했다. 23년간 외과의사로 근무한 뒤 지금은 대학병원에서 가르친다고 했다.
“이런 제가 왜 프로폴리스 제품을 만든 줄 아세요? 제 아내가 암에 걸렸거든요. 사랑하는 아내를 살리려고 임상실험까지 해가면서 결국 이 제품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런 식으로 사연까지 꾸며댔다. A씨 일당은 2만5000원짜리 제품을 12만8000원, 8만원짜리를 39만8000원에 팔았다. 이렇게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까지 585명에게 8억원어치를 판 혐의로 5명이 붙잡히고 그중 1명은 구속됐다. 이 조직은 노인들을 회원제로 관리한 것으로 조사됐다.
다단계 회사를 이용한 떴다방도 있었다. B씨 등 5명은 지난해 3월부터 올 3월까지 울산 광주 전주 등 전국 18곳에 주식회사 형태로 지역센터를 열고 사업설명회를 하는 것처럼 노인들을 유인했다. 현미와 밀 등을 섞어 만든 일반식품을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홍보했다. 암 뇌경색 파킨슨병 등으로 치료 중인 노인들이 절박한 심정에 넘어갔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자식보다 살가운 대접에… 쌈짓돈 털린 노인들
입력 2014-12-17 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