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15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제유가 하락이 국내 휘발유 가격 등에 적시에 반영되는지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전기와 가스 등 공공요금에도 유가 절감분이 즉각 반영되도록 해달라”고 주문했다. 가계 주름살이 펴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그러나 관련 공공기관과 정부부처는 후속 조치 마련을 위해 비상이 걸리는 등 후폭풍이 만만찮다. 디플레이션 가속화 우려와 함께 과연 대통령 말대로 단순하게 ‘유가 하락→공공요금 인하’가 가능한 것인지 논란도 일고 있다.
박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언급한 공공요금은 가스와 전기다. 그러나 가스요금은 인위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없다. 지금도 원료 도입가격이 3% 이상 변화하면 홀수 달에 이를 자동으로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가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급격한 유가 하락 속도를 감안하면 내년 1월 가스요금 인하는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전기요금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16일 “유가 하락에 따른 인하 요인과 내년부터 시행되는 배출권거래제 등 인상 요인을 비교·검토하고 있다”면서 “현재로선 인하 여부를 말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기요금의 원가보상률은 지난해 기준 95.0%다. 지난해 두 차례 요금을 인상하면서 90%대에 진입했지만 여전히 ‘밑지고 파는 장사’인 셈이다. 또 전기를 생산하는 원료에서 석유와 가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26%밖에 되지 않는다. 원자력과 유연탄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여기에 내년부터 지역자원시설세가 신설되고 송전선로 주변지역 보상도 이뤄져야 한다. 정부 내에서는 사실상 인하보다 인상 요인이 많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물가 당국은 다른 한편으로 공공요금 인하에 따른 디플레이션을 걱정하고 있다. 물가상승률이 25개월째 1%대에 머물고 있는 사상 초유의 저물가 상황에서 공공요금 인하는 디플레이션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디플레이션이 무서운 것은 한번 빠져들면 헤어나오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이라며 “내년 우리 경제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증시 안팎에서는 대통령의 발언이 국민주로 상장된 한전 주주들의 권리를 침해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일고 있다. 국민재산 형성에 기여한다는 취지로 국민주 방식으로 상장해놓고 정부가 주가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지시사항이라는 무게감을 감안할 때 전기요금 인하는 한순간의 해프닝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한전의 수익성이 개선되고 있다는 점도 인하 요인으로 꼽힌다. 키움증권은 이날 액화천연가스(LNG) 등 한전의 연료구입비용이 40% 하락할 경우 연간 약 10% 수준(5조∼6조원)의 요금 인하 요인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전기요금 인하가 이뤄지기 위해선 우선 한전 이사회에서 이를 의결해 주무부처인 산업부에 요금 조정을 요청해야 한다. 물론 외국인 주주 지분율이 28%에 이르는 상황에서 과연 한전이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는 요금 인하를 산업부에 요청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뉴스분석] 국제 유가 폭락에 朴대통령 “전기요금 즉각 낮추라”는데…
입력 2014-12-17 0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