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이 네 번 바뀔 세월이 흘렀지만 몸속에 흐르는 피는 혈육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자줏빛 점퍼를 곱게 차려입은 최순자(70·여)씨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순간 이정미(44·여)씨의 다리가 맥없이 풀렸다. “어머니!” 이씨는 털썩 주저앉으며 외쳤다. 가슴 깊은 곳에 응어리져 있던 그리움이 터져 나왔다. 모녀간인 이들은 16일 오전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가족 찾기 프로그램을 통해 40년 만에 마주했다.
이씨에겐 고향과 가족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바다가 가까운 곳이었다는 것만 가끔 생각날 뿐이다. 1974년 네 살이던 이씨와 둘째언니 정옥(당시 8세)씨를 두고 떠나던 어머니의 뒷모습만 어렴풋이 떠오른다고 했다. 전남 해남에 살던 이씨 부모는 큰딸과 막내아들만 남기고 나머지 딸 둘을 경기도 큰아버지 댁에 맡겼다. 여섯 식구가 다 굶어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입에 풀칠하기 어려운 건 큰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결국 이씨를 서울에 사는 지인에게 수양딸로 보냈다. 곁에 있던 유일한 혈육인 둘째언니와도 그렇게 헤어졌다.
8년 뒤 둘째언니는 가족을 다시 만났지만 이씨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이씨를 양녀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파양했다. 그 무렵 이씨는 몇 집을 떠돌다 전남 구례의 한 노부부에게 보내져 ‘윤정미’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초등학교에도 들어갔다. 양부모는 이씨를 극진히 아꼈다. 이씨도 친부모처럼 따랐다. 가족을 찾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한평생 “가족에게 버림받았다”는 기억만 안고 살아 왔다고 한다.
그동안 가족들은 사방팔방으로 이씨를 찾아다녔다. 신문에 광고도 내보고, 실종가족 찾기 방송에도 출연했다. 이젠 찾기 어렵나 보다 생각할 즈음이었다. 지난 10월 전남 해남경찰서 경찰관이 어머니 최씨에게 “유전자 감식으로 가족을 찾아주는 곳이 있으니 등록해 보라”고 조언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최씨는 초록우산 실종아동전문기관에 유전자를 등록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들었다. ‘1년 전 딸이 유전자를 등록해 놨고, 최종 일치 판정이 났다’는 것이었다. 이씨도 지난해 8월 같은 기관에 유전자 등록을 해놓은 상태였다. “당신과 닮은 사람이 동생을 찾고 있다”는 소식에 두 차례 유전자 검사를 했지만 혈육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직후였다. 이씨는 “내 가족들도 나를 찾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매서운 겨울 칼바람도 ‘40년 묵은 그리움’을 막지 못했다. 밤새 잠을 설친 최씨는 이른 아침 둘째딸과 사위, 막내아들을 데리고 서울 중구 초록우산 사무실을 찾았다. 제일 아끼는 진주목걸이를 걸었다.
네 살배기였던 딸은 어느덧 스물세 살 아들을 둔 엄마가 돼 있었다. 최씨는 이씨 얼굴을 매만지며 “내가 너를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며 울부짖다 혼절했다. “아이고 내 새끼 엄마가 미안하다, 엄마가 미안해….” 회한과 기쁨이 뒤섞인, 세상에서 가장 처연한 울음이었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
네 살 때 사라진 딸, 마흔넷에 돌아왔다… 40년 만에 친어머니 찾은 이정미씨
입력 2014-12-17 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