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총리님, 고마워요 한글 깨우치게 해줘서…"

입력 2014-12-17 02:06
정홍원 국무총리(왼쪽)가 지난 10월 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한글날 경축식에서 백소순 할머니를 만나 대화를 나누며 박수치고 있다. 경남 거창군 마리면 풍계마을에 사는 백 할머니 등 '할머니 쁅인방'은 지난달 17일 정 총리에게 한글로 쓴 '손편지'를 보냈다. 국무총리실 제공

지난달 17일 정홍원 국무총리에게 연필로 꾹꾹 눌러쓴 ‘손편지’ 5통이 배달됐다. 발신자는 경상남도 거창군 마리면 풍계마을에 사는 할머니 5명이었다.

강말순(82) 백소순(80) 김순분(79) 이필순(79) 신금순(73)씨 등 ‘할머니 5인방’은 지난 10월 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한글날 경축식에 초대돼 서울 구경을 했다. 초대자는 정 총리였다. 이 할머니들은 원래 경축식 초대인사 명단에 들어있지 않았다. 정 총리가 강씨 등이 백발의 나이에 한글을 배우는 모습을 방송 프로그램으로 접한 뒤 감동해 이들을 갑자기 초대한 것이다.

그날의 나들이가 무척 기뻤던 할머니들은 가만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어렵게 배운 한글로 손편지를 써서 정 총리에게 보냈다.

“한글을 배워 자식 먼저 보낸 어미의 심정을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억수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경상도 사투리 표현이 적당히 적힌 강 할머니의 편지에는 “하늘나라에 있는 아들한테 ‘보고 싶다’고 편지를 썼다”는 대목도 있었다. 편지 말미에는 “국무총리님 논에 가서 미꾸라지 잡아서 추어탕 끓려(끓여) 소주 한잔 드시로(드시러) 오이소”라고 적었다. 백 할머니는 “팔십 평생 부녀회장 하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더 큰 소원을 이뤄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우리나라를 더 잘사는 나라로 만들어 주시고 건강하십시오”라고 썼다. 김 할머니는 “한글을 배워 약봉투를 읽고 장날 시장에서 풍계마을 오는 버스를 남들한테 묻지 않고 타고 올 수 있어서 좋았다”고 적었다. 이 할머니는 “청국장 보글보글 끓이고 가을무 쏘옥 뽑아 와서 채나물 무치고 손두부 만들어 총리님께 대접을 하고 싶다”고 했다.

정 총리는 며칠 동안이나 이 편지들을 양복 안주머니에 넣고 다닐 정도로 아꼈다고 한다. 지난달 25일에는 강 할머니에게 대표로 편지도 한 통 보냈다고 총리실 관계자가 16일 전했다. 정 총리는 답장에서 “할머님께서 손수 써서 주신 편지는 제가 그동안 받은 어떤 편지보다 더 귀하고 정성이 담겨 있었다”고 했다. 또 “할머님들 사연을 읽으면서 제 마음까지 뭉클했다. 포기하지 마시고 한글 공부 계속해 달라”고도 적었다.

정부는 2010년부터 풍계마을 할머니들처럼 교육 기회를 놓친 저학력·비문해 성인에게 한글을 교육하는 ‘성인문해교육’ 사업을 해오고 있다.

정 총리는 한글날 할머니 5인방을 만난 자리에서 배석했던 김신호 교육부 차관에게 내년 성인문해교육예산 증액을 당부해 내년도 관련예산이 올해보다 10억원 늘어난 38억4300만원으로 확정됐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