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3년차 앞둔 靑 이대론 안된다 (1) 시스템 부실] 파문 증폭시킨 ‘靑의 허점’

입력 2014-12-17 03:59 수정 2014-12-17 09:38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가운데)이 1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16차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 참석해 입을 굳게 다문 채 앉아 있다. 이동희 기자

연말 정국을 연일 강타하고 있는 이른바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파문은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점점 더 ‘실체 없음’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이번 파문은 첩보 또는 동향보고 수준의 문건 유출과 이를 입수한 언론사의 보도로 시작됐다. 그러나 이를 더욱 증폭시킨 근본적인 배경은 청와대의 안이한 초동대응과 비밀주의, 조율능력 부재에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우선 청와대가 이번 문건 파문에서 보여준 대응능력은 대통령 보좌 기구로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는 지난 1월 박관천 경정이 작성한 ‘정윤회씨 등 동향’ 문건이 공식 라인을 거쳐 보고됐는데도 이를 ‘풍설’ 수준이라며 묵살하는 데 그쳤다. 구체적인 사실관계나 보고 경위 등에 대한 확인작업은 없었고, 한 달 뒤인 2월 박 경정 인사조치만 이뤄졌을 뿐이다.

이후의 과정은 더욱 허점이 많다. 청와대는 4월 초 세계일보의 ‘비위 행정관 원대복귀’ 보도 직후 내부 문건 유출 사실을 파악했다. 하지만 문건 회수 또는 유출자 색출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당시 청와대는 박 경정을 유출자로 의심하고 감찰을 벌였지만 뚜렷한 후속조치 없이 박 경정 상관인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만 교체했다. 또 6월 조 전 비서관이 오모 전 행정관을 통해 문건 128장 사본을 청와대에 전달하는 등 문건 유출 사실을 다시 알렸지만 구체적인 사후 조치는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 오 전 행정관에 대한 대기발령 조치만 취했을 뿐이다.

결국 복수의 언론사와 대기업 등에까지 대외비인 청와대 내부 문건이 돌아다니는데도 청와대 안의 누구도 회수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청와대에서 ‘사고’가 생겼는데도 대대적인 사실관계 파악 및 보완책 마련은 하지 않고 관련자들에 대한 인사조치만 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보고는커녕 사건 무마에 급급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박 대통령이 지난 1일 회의에서 직접 “터무니없는 얘기” “국기문란행위”라고 하고 나선 뒤에야 청와대는 감찰을 다시 벌였으나 이번에는 강압 조사 논란을 빚었다.

더욱이 애시당초 이번 파문의 진원지가 이재만 총무비서관 등 청와대 3인방과 조 전 비서관 측의 갈등 구도에서 비롯됐고, 잡음 역시 여러 번 있었는데도 청와대 내부에서 이를 조율하거나 조정한 흔적은 찾기 어렵다. 비서관들 간에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이 장기간 이어졌지만 대통령 비서실을 총괄하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지난 11월 28일 세계일보의 ‘정윤회씨 문건’ 보도 이후의 청와대 대응 역시 도마에 오른다. 관련 의혹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향후 조치 등을 명쾌하게 밝혀야 했지만 뒤늦은 함구령 속에 언론사와 기자 고소 등 강경 대응만 했다. 이런 총체적인 문제를 보인 청와대가 앞으로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이루지 않는 한 향후 박근혜정부의 정상적인 국정 운영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여권 관계자는 16일 “사건 초기부터 청와대가 관련 의혹에 대해 선제적인 대응을 했다면 이번 의혹이 이렇게까지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청와대의 구조적인 문제와 참모들의 소극적인 마인드가 파문 확산에 한몫했다”고 지적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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