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간의 포스코 생활을 마감하고 19일 정년퇴직을 앞둔 광양제철소 생산기술부 최영식(58)씨. 그는 포스코 광양제철소 가동 때부터 현재까지 27년간의 생업 현장을 수첩 30권에 걸쳐 매일 기록한 ‘철의 남자’다.
최씨는 1980년 25세에 포스코의 전신인 포항제철에 입사했다. 1987년 전남 광양에 제철소가 들어오면서 이곳으로 발령받은 그는 첫날부터 회사수첩에 광양제철소의 시작과 성장, 개인사 등을 빠짐없이 기록하기 시작했다.
최씨는 철강인으로 한길을 걸으면서 겪은 성취와 감동, 삶의 고단함과 애환, 회사의 성장과 함께 갈등하고 만족했던 순간들을 매일 기록으로 남겼다. 기록에는 묵묵히 뒷바라지해준 아내와 자녀에 대한 애틋한 사랑도 담겨있다.
1992년 포스코가 3조3교대에서 4조3교대로 전환하던 날에는 “선진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시작되던 것이다. 직원들 심신 단련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적었다.
또 같은 해 광양제철소가 광양4기 공장 준공으로 1140만t의 조강생산 능력을 갖췄을 때의 기쁨과 환희도 적었다. 최씨는 “이로써 포스코가 총 2100만t의 조강생산 체제를 갖추게 됐다”면서 “포항(포항제철)에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광양만(광양제철)에서는 세계를 향한 대역사를 마무리했다. 이런 현장을 지켜보는 자신이 자랑스럽고 회사에 무한 긍지를 느끼는 하루”라고 썼다.
3200억원의 순이익을 낸 1994년 1월에는 “회사는 사상 최대 흑자를 기록했다. 지난 1년 동안 직원 전체가 매우 열심히 일해 온 결과”라고 적기도 했다.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1995년 포스코 민영화, 1998년 IMF 금 모으기 운동 등 회사와 사회를 뒤흔든 굵직한 사건 등도 자신의 견해를 담아 수첩에 남겼다. 빛바랜 낡은 수첩 30권 안에 34년 동안 ‘철강맨’으로 살아온 그의 생활과 광양제철소의 변천사가 기록된 것이다.
1981년 1월 첫 봉급 8만원을 받았을 때부터 계좌이체로 월급봉투가 사라진 2003년 1월까지 매달 회사에서 받은 월급봉투도 빠짐없이 간직하고 있다. 그는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해준 회사가 고마워 버릴 수 없었다”고 했다.
고졸 출신으로 포스코에 입사한 최씨는 2008년 3월 한 지방대학 야간에 입학해 사회복지사와 보육교사, 청소년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올해 8월 대학원 석사과정까지 마쳤다. 최씨는 “가장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게 해준 회사와 동료들에게 너무나 감사하다”면서 “비록 몸은 회사를 떠나지만 자랑스러운 광양제철소의 철강인으로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광양=글·사진 김영균 기자 ykk222@kmib.co.kr
그의 수첩엔… 광양제철소 성장史가 있다
입력 2014-12-17 0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