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 사는 A씨는 최근 소셜커머스(SNS를 활용한 전자상거래) 사이트에서 대형마트 상품권 4장을 샀다. 소셜커머스 업체는 상품권 식별번호인 핀(PIN)번호를 A씨에게 문자로 전송했다. 집 근처 대형마트를 찾은 A씨는 계산대에서 상품권과 핀번호를 내밀었다. 그런데 계산원이 4장 중 1장은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당황한 A씨는 소셜커머스 업체에 연락했지만 “저희가 확인한 결과 그 상품권은 이미 다른 매장에서 사용됐다”는 답변만 들었다. “다른 매장에 간 적이 없고 상품권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항의했으나 입증할 방도가 없었다. 이 업체는 A씨의 환불 요구를 거절했다.
30대 남성 B씨는 지난 3월 17만4400원짜리 구두를 사면서 10만원 상품권 2장을 냈다. 매장 직원은 잔돈 2만5600원 중 600원만 현금으로 주고 나머지 2만5000원은 상품권으로 되돌려줬다. B씨는 상품권 권면가격의 60% 이상을 썼으니 거스름돈을 모두 현금으로 달라고 했지만 직원은 그럴 수 없다고 답했다. 입씨름에 지친 B씨는 한국소비자원에 피해구제 신청을 접수했다.
‘상품권 전성시대’를 맞아 그 ‘그늘’도 짙어지고 있다. 지난해 한국조폐공사에서 인쇄된 상품권은 8조2795억원어치였다. 조폐공사를 거치지 않는 상품권까지 포함하면 국내 상품권 시장은 연간 11조원 규모다. 매년 30%씩 성장하고 있다. 특히 모바일상품권 시장은 2008년 32억원에서 지난해 1413억원으로 급성장했다.
반면 소비자 피해 예방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상품권 발행과 유통업체를 검증할 정부기관이나 민간단체가 없다. 1999년 ‘상품권법’ 폐지 이후 구속력 있는 법규나 분쟁 해결 수단도 없는 상태다.
16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상품권 상담건수는 연평균 2200여건이나 된다. 피해가 구제된 경우는 3∼10%에 불과하다. 2010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접수된 상품권 피해구제 신청 545건 중 59.4%가 대금을 결제하고도 판매업체로부터 상품권을 받지 못한 ‘상품권 판매 사기’였다. 유효기간 이후 일정 금액을 환불받지 못한 경우(16.1%)가 두 번째로 많았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는 유효기간이 지났어도 소멸시효(5년) 전에는 상품권 금액의 90%를 환불해주도록 돼 있다. 이 규정은 모든 상품권에 적용되지만 어겨도 처벌할 법규가 없다.
이신애 소비자원 조정관은 “피해 구제 신청을 받으면 업체 측에 규정을 준수토록 권고할 뿐”이라며 “일부 피해자는 민사소송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소액 피해여서 그런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여기에 상품권 발행업체는 쏠쏠한 ‘상품권 낙전수익’을 거두고 있다. 상품권 판매 후 5년이 지나 소멸되면 그 금액은 고스란히 업체 주머니로 들어간다. 경실련 시민권익센터 권태환 간사는 “문화상품권 해피머니상품권 도서문화상품권 등 3개 상품권을 조사했더니 지난 5년간 472억원 낙전이 발생했다”며 “상품권 관리 주체를 명확히 해서 갈수록 늘어나는 피해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기획] 모바일 상품권 안 썼는데 “사용됐다”… 업체 환불 거절에 소비자는 가슴 쳤다
입력 2014-12-17 0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