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경제성장 추이를 살펴보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992∼1997년에 연평균 7.1%, 1998∼2007년 5.9%, 그리고 2008∼2013년 3.2%를 기록하고 있어 최근 20년간 지속적으로 성장이 둔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장기적으로 성장이 둔화되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1인당 소득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경제성장률이 낮아진다는 수렴 현상에 기인하는 바 크며 이는 최근 50년간 주요 선진국과 신흥개도국 성장률 자료에서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1인당 소득은 약 2만3000달러를 기록하고 있으며 이와 동일한 소득 수준을 미국은 70년대,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은 80년대에 이미 달성했고 당시 이 국가들은 연평균 2.6% 성장을 이루었다. 홍콩과 싱가포르의 경우는 동일한 소득 수준을 10여년 전 달성했고 그 당시 연평균 4% 성장을 한 바 있다. 이러한 관찰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에서 현실화되고 있는 저성장은 크게 놀라운 일은 아닌 것이다.
저성장 기조가 굳어져 가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투자 부진, 기업 간 성과의 양극화, 고용불안, 소득분배의 악화 등으로 사회경제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문제들은 저성장과 관련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저성장기의 성장 단계에서는 과거와 달리 투자가 쉽게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기업들은 투자를 주저하게 되고 이는 다시 저성장의 원인이 된다. 또한 저성장기에는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과거와 달리 숨겨진 비효율이나 한순간 잘못된 결정이 기업의 존망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고용 유연성을 추구하게 되어 고용불안이 초래되고, 하청업체에 비용절감 압박을 가하게 되어 중소기업들의 성과가 낮아질 수 있는 것이다. 저성장은 하위소득 계층에게 가장 큰 타격을 주어 소득분배 악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럼 저성장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우선 현재 고용불안 심화에 대응하여 고용안정 장치에 대한 정치사회적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문제는 고용안정성 강화가 비효율이 용납되지 않는 저성장기에 속한 기업들에는 매우 어려운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고용불안에 대처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취약한 사회안전망 강화와 재교육을 통한 재취업 시장 활성화 방안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즉 경쟁을 피하기 어렵다면 경쟁으로부터 오는 피로감과 불안감을 완화시키기 위해 사회안전망 구축과 함께 경제주체가 실패할 경우 다시 건강한 경제주체로 복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긴요하다.
둘째, 경쟁적 여건 확보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동반성장 정책과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등의 제도가 단기적으로는 중소기업의 안정성을 높이고 경쟁을 완화해 즉각적으로 중소기업을 돕는 측면이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의 역동성을 낮추고 효율성을 저해해 성장 기반이 약화되고 그로 인해 사회경제적 갈등이 심화되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저성장 사회에서 경쟁을 저해하는 제도 도입은 더더욱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셋째, 투명성과 혁신성을 높여야 한다. 투명성 제고를 통해 정부와 기업들의 숨겨진 비효율을 제거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정부 정책 또한 과거의 성공방식을 잊고 성장을 주도하기보다는 걸림돌을 제거해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기업 또한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투명성과 합리성을 높여 가며 시장의 변화에 더욱 민감해지고 자신의 혁신성과 생산성을 지속적으로 높여 나아가는 길을 택해야 한다.
단기적 해법에 급급해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경제가 서서히 침몰하는 길을 택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저성장 시대에 대처하기 위한 근본적인 변화와 개혁들이 나타나길 기대해본다.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경제시평-박정수] 저성장 시대에 대처하는 방법
입력 2014-12-17 0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