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곽효정] 우리가 이별을 생각할 때

입력 2014-12-17 02:10

어릴 땐 종종 이별을 상상했다. 자고 일어나서 아무도 곁에 없으면 어쩌나 두려웠다. 그것은 나이 들어서도 나를 따라다녔다. 그러면서 점점 사소한 것들이 소중해졌다. 반복되던 엄마의 잔소리, 느려터진 아빠의 발걸음, 새벽기도에 갈 채비로 부스럭거리던 할머니의 실루엣….

첫 직장의 고정 인터뷰이는 후원이 필요한 이들이었다. 그들은 대개 결손가정의 자녀이거나 가족 중 하나가 불치병에 걸려 형편이 어려웠다. 그 첫 인터뷰이는 태어나자마자 산소통을 달고 숨을 이어가야 했던 백일 된 아이 아버지였다. 아이보다 더 마른 아버지, 그의 눈동자가 젖어드는 것을 바라볼 수 없어 나는 내내 방바닥만 바라봤다. “아가가 방긋 웃는 거 보면 어떻게든 살아 버텨야지 하다가도 한편으로 세상을 떠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요.” 그가 그렇게 말하고 한 달 후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 아이 아버지로부터 온 문자를 바라보며 어떤 답장을 보내야 할지 한참을 망설였다.

불치병에 걸린 마흔 살의 아들을 돌보던 할머니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을 건네주었을 때, 하루아침에 쓰러져 시한부 판정을 받은 한 아이의 엄마가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으로 이게 꿈만 같다고 말했을 때,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해 가만히 손 내밀던 내게 그들이 오히려 따뜻한 말을 건넸다. 그렇게 3년 반이 흘렀다.

올해 초 고등학생 때부터 어울렸던 친구가 혈액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무더운 여름 그는 어여쁜 두 딸을 남겨두고 어머니의 품에서 세상을 떠났다. 친구의 죽음을 처음 경험한 우리는, 함께 울었다.

어릴 땐 막연해서 죽음이라 말하지 못하고 영원한 이별이라 생각했던 일들을 겪으며 나는 내 마지막과 내 곁의 마지막을 생각하곤 했다. 그것은 보내주는 사람에게나 떠나는 사람에게, 모두 준비가 필요한 것이리라.

지난주 이창재 감독의 ‘목숨’을 봤다. 삶의 끝에서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머문다는 호스피스, 그곳의 이야기는 마지막에 대한 두려움이 오히려 경건하고 아름다운 것임을 보여주었다. 당장 삶에 대한 내 태도가 바뀐 것은 아니지만 깨달은 것은 있다. 삶만큼이나 죽음이 중요하다는 것. 당연한데도 자주 잊고 산다.

곽효정(매거진 '오늘'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