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쌀만 한 핏자국, 토막살인 증언하다

입력 2014-12-16 03:47
경기도 수원 팔달산 토막살인 피의자 박춘봉(55·중국 국적)씨 검거에는 두루마리 휴지에 묻은 ‘좁쌀’만 한 혈흔이 결정적인 단서가 됐다. 또 박씨는 피해자 김모(48)씨를 살해한 뒤 시신은 새로 이사한 집에서 처리하는 등 치밀하게 계획된 범행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1일 오전 10시10분 경기지방경찰청 112상황실로 제보 전화가 걸려왔다. A씨는 “이런 걸 제보해도 되는지 모르겠다”며 “월세방을 계약하기로 한 사람이 날짜가 지났는데도 안 나타난다”고 말했다.

형사 2명이 출동했으나 집주인이 온천여행을 간 상태라 반지하방 문을 강제로 열지 못하고 일단 복귀했다. 오후 3시35분쯤 A씨가 다시 전화를 해 “오전에 신고한 사람인데, 방에 들어가 보니 박스 안에 비닐봉지와 장갑이 있다”고 제보했다.

다시 현장에 나간 형사 2명은 방을 둘러보다 두루마리 화장지에 묻은 좁쌀만 한 피 한 방울을 찾아냈다. 곧바로 과학수사대 요원들이 투입됐다. 이들은 방안을 감식해 인혈 반응을 확인했고, 욕실 수도꼭지에 묻은 인체 조직 일부도 찾아냈다. 나중에 지방 덩어리로 밝혀진 이 흔적은 불과 1㎜도 안 되는 크기였다. 과학수사 요원의 날카로운 눈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DNA 분석 결과 혈흔이나 인체조직은 피해여성 김씨의 DNA와 일치했다.

박씨는 새로 이사하는 집 계약 시 이름을 밝히지 않고, 타인 명의 휴대전화를 기재했다가 곧 해지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박씨의 동거녀 김씨를 전 주거지에서 살해하고 당일 오후 이곳에서 약 200m 떨어진 교동의 반지하방을 가계약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15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달 26일 오후 2∼4시 사이 말싸움 중 동거녀 김씨 목을 졸라 살해했고, 오후 6시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를 찾아가 월세방을 가계약한 뒤 돌아왔다. 전 주거지가 지난달 10일 계약 만료됐지만 옮기지 않고 있다가 김씨 살해 후 불과 2∼4시간 만에 새집을 구한 것이다.

아직까지 박씨의 구체적인 행적은 나오지 않고 있다. 박씨는 지난달 26일 이후 전 주거지에서 시신을 1차로 상당부분 토막 낸 뒤 새로 얻은 반지하방으로 옮겼고 이곳에서 나머지 부분을 잔혹하게 훼손해 팔달산 등 4곳에 유기했다.

경찰이 주변 CCTV 영상을 확인한 결과 지난 3일 오전 2시쯤 박씨는 반지하방에서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팔달산 쪽으로 향했다. 경찰은 박씨가 지난 3일 시신 일부분을 팔달산에 유기한 뒤 나머지 사체는 1주일간 집에 보관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은 아직 수습하지 못한 김씨의 한쪽 팔과 다리 등 시신을 수색하고 있다.

한편 살해된 김씨는 3년 전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으로 들어와 수원에 정착했다. 이후 수원 팔달구의 한 마트에서 종업원으로 힘들게 일했던 김씨는 지난해 중국 옌볜에 있던 어머니와 언니까지 한국으로 불러들여 수원에서 함께 살았다. 그러다 지난 4월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박씨를 만나 매교동 한 주택에서 동거를 시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원=강희청 기자 kangh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