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정은 우리나라 정치에선 낯선 단어다.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다.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그 첫 실험이 경기도에서 진행되고 있다. 경기도 연정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새누리당 소속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제의를 받아들여 탄생했다. 이제 막 첫걸음마를 뗀 경기도 연정은 경기도민만이 아닌 국민적 관심사가 됐다. 성공 여부에 따라 승자 독식의 우리 정치 제도와 환경에 혁명적인 지각 변동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연정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이기우 경기도 사회통합부지사를 지난 12일 경기도청 집무실에서 만났다. 이 부지사는 “말뿐인 연정이 아닌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연정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4일 취임했는데 소감은.
“처음 시도하는 연정이어서 도민들의 관심과 기대가 크고 높다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다. 정치를 불신했던 도민들이 여야가 함께하는 것에 대해 새로운 기대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남 지사의 연정 제의를 받아들인 이유가 궁금하다.
“지방정치는 중앙정치와 다르게 생활정치다. 생활정치 영역 속에서 도민들이 필요로 하는 일을 여야가 함께한다면 굳이 정쟁할 필요가 없다. 여야가 경쟁해서 좋은 내용을 하나로 묶어 그것을 도민들에게 되돌려줄 수 있다면 여야 모두 박수받을 것이다. 여야가 상생하고 통합하면서, 또 정책적으로 경쟁할 땐 경쟁하자는 남 지사 제안에 새정치민주연합도 적극 동의했다. 부지사 파견으로 끝나지 않고 사전에 선정한 정책 의제에 기초한 연정을 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야당 부지사 한 명이 도정에 참여한 것을 연정이라고 하는 게 억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연립정권이 아니고 연합정치라고 분명하게 명명하고 있다. 그렇기에 첫발을 내딛는 게 중요하다. 여야 정책합의문에 따라 사회통합부지사를 먼저 임명하고, 사회통합부지사가 보건복지국, 환경국 등 몇 개 국(局)의 업무를 담당하게 돼 있다. 정착이 잘되면 한 단계 진전된 연정으로 갈 수 있다고 본다. 지금도 사회통합부지사에 다양한 인사추천권과 예산편성권이 주어져 있다. 좋은 성과를 내고 정당 간에 신뢰가 쌓이면 연정이 단계적으로 진전할 것으로 본다.”
-경기도의회 의석분포가 여소야대가 아닌 여대야소였어도 새누리당이 연정을 제의했을 것으로 보나.
“(웃으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상황에 따라 대응이 달랐을 것이다. 남 지사는 국회의원 시절에도 상생정치를 강조했다. 여소야대라는 상황도 있었겠으나 연정에 대한 남 지사의 철학과 소신, 진정성을 신뢰한다.”
-연정의 장점을 꼽는다면.
“연정은 두 가지가 전제돼야 한다. 첫째 구성원 간에 신뢰가 있어야 한다. 두 번째 연정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성공시키고자 하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하나만 소홀해도 연정은 깨질 수밖에 없다. 몇 달 동안 어려운 과정을 거쳐 연정에 이르렀다. 사회통합부지사 탄생 과정이 대단히 소중하다. 연정 협상과정에서 여야가 보여준 소통과 화합의 정신이 경기도의회와 도 집행부를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매개 고리가 될 것이다. 신뢰 속에서 소통이 이뤄지면 여러 가지 사업들에 지속성이 생긴다. 연정은 기본적으로 모든 성과물을 도민들에게 되돌려드리는 것이다. 항상 도민들의 여론과 민심을 살피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이것이 쌍방향으로 이뤄지면 경기도는 한두 단계 성숙한 정치 환경을 만들 수 있다.”
-걸핏하면 싸움이나 하는 우리 정치 풍토에서 연정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사람이 적지 않다.
“조심스럽게 연정의 성공을 낙관하고 있다. 연정을 바라보는 도민의 기대와 관심이 따뜻하다. 경기도에서만큼은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 도민들의 기대가 가장 큰 응원의 힘이다. 비록 시작은 작지만 나중은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연정이 될 것이다.”
-남 지사와의 개인적 친분은. 호흡은 잘 맞나.
“같은 수원 출신이고 국회의원 생활을 같이한 적이 있다. 같은 정당, 같은 상임위에서 활동한 적은 없지만 같은 세대를 살아왔기 때문에 생각은 다를지라도 서로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부지사 임명 과정에 남 지사 의사가 많이 반영됐는가.
“지사가 새정치연합에 추천권을 주었기 때문에 지사가 개입한 일은 전혀 없다. 지사가 생각하는 연정에 대해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눈 적도 없다. 나는 내 나름의 지방분권에 대한 소신과 철학이 있다. 서로 내용을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연정에 대한 기본 방향은 같다. 이제는 이것을 구체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무상급식 예산을 둘러싸고 경기도의회에서 여야 대립이 심해 ‘연정무용론’마저 나오고 있다. 이처럼 도의 정책과 당의 방침이 충돌할 때 부지사로서 입장이 난처할 것 같다.
“집행부 일원이 됐기 때문에 집행부가 어떤 판단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무상급식 문제만 해도 경기도만이 아닌 대한민국 전체의 이슈다. 이것을 어떻게 우리 실정에 맞게 도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냐 하는 것은 연정의 핵심이다. 이 정도의 내용을 우리가 성숙하게 소통하지 못한다면 연정은 어렵다. 여야 간에 입장 차이는 있으나 서로의 명분과 원칙을 알고 있기에 도민 기대에 맞는 대안이 만들어질 것으로 본다. 나는 당의 입장만 대변하는 위치에 있지 않다. 사전에 이견을 조율하는 역할이 더 중요하다. 원만하고 성숙한 합의과정을 만드는 게 내 역할이다.”
-취임사에서 ‘하나의 경기도’와 ‘소통’을 강조했는데.
“남 지사가 업무를 시작한 지 6개월째가 돼서야 연정의 핵심인 사회통합부지사가 취임했다. 경기도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도정에 대한 모든 로드맵과 결과에 대한 평가는 연정을 제외하고 생각하기 어렵게 되어있다. 도민과 경기도, 도의회가 상생 소통해야 연정이 성공한다. (연정으로) 작은 성과를 내더라도 이해 당사자가 함께 양해하고 함께 발을 내디딜 수 있는 열린 경기도정 시대가 열렸다. 열린 도정은 대한민국 정치발전에 디딤돌이 될 것이다.”
-도 차원에서 계획하고 있는 단원고 학생 희생자 지원 방안이 있나.
“안산대책은 연정합의문에도 포함돼 있다. 안산의 상처는 안산의 상처만이 아닌 대한민국 전체의 상처다. 아픔을 치유하는 책임은 우리 세대에 있다. 팽목항 철수 이후 중앙정부의 관심이 많이 떨어졌다. 중앙정부의 관심 부족은 아직 치유되지 않은 지역과 유가족, 안산시민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지향하는 도정의 핵심은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에 있다. 안산을 재난, 응급구조, 치유, 공동체, 사회복지 등이 모두 실현 가능한 시범도시로 만들 필요가 있다. 내년에 용역을 줘 이를 구체화할 생각이다. 안이 만들어지면 청와대와 중앙정부, 국회에도 협조를 요청할 생각이다.”
이 부지사는 “도민들이 바라는 눈높이가 어디인지 항상 대비하는 도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사회적 투자비용이 훨씬 많이 든다”면서 “소통의 가치로서 그 어느 곳보다 연정이 필요한 곳이 경기도”라고 확신했다. 다시 연정문제로 화제가 옮겨졌다.
-다음 선거에서 새정치연합 후보가 도지사에 당선돼도 연정이 이뤄질 것으로 보는가.
“지금으로선 확신하기 어렵다. 이번 연정은 실험적 연정이다. 하나둘 성과물이 생긴다면 연정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높아질 것이다. 이번 연정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지방자치법을 보면 연정의 제약요소가 있다. 이번 연정 성과가 좋으면 지방자치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많을 것이다. 경기도가 연정을 잘하면 다른 도에서도 벤치마킹하려고 할 것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왜 연정 시도가 없을까.
“지역적 특성의 차이가 있고 제안자들이 생각하는 연정의 이해 수준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동일한 잣대로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어디라도 연정을 하면 상생할 수 있고 그 틀 안에서 경쟁하다 결국엔 안 되더라도 그냥 방치하는 게 아니라 하나라도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서 도민들에게 되돌려드려야겠다는 사명감만 갖는다면 여기저기서 연정이 꽃을 피울 것이다. 기초자치단체에서도 가능하다. 경쟁력 있는 자치단체 간의 협력도 가능하다. 모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한 단계 한 단계 발전시키자는 대원칙만 합의된다면 연정을 못할 이유가 없다.”
-중앙정치에서도 연정이 가능하겠나.
“해결하기 어려운 제도적 제약도 있고, 정치 환경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국민들은 현실의 어려움과 고통,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확신으로 고민이 끊이질 않는다. 국민들은 이런 고민을 해소해줄 수 있는 새정치를 원하고 있다. 연정이 새정치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새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염원이 지역에서부터 시작된다면 단계적으로 중앙에까지 그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본다.”
-중앙정치에 바라는 점이 많을 것 같다.
“중앙이나 지방 모두 국민 눈높이에 맞추지 않으면 신뢰받기 어렵다. 중앙은 지방과 사전협의하고 결과를 함께 나누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지방분권 혁신을 위해 지방자치법을 개정하고 지방의회가 독자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조직과 재정에 대해 숨통을 터줘야 한다. 지방의 자율성을 보장해주면 충분히 좋은 도정을 펼칠 수 있다.”
이기우 부지사는
이기우(48) 경기도 사회통합부지사는 바쁘다. 인터뷰를 하러 지난 12일 약속시간에 맞춰 경기도청 신관 2층에 자리한 집무실을 찾았을 때 그는 자리에 없었다. 뒤늦게 나타난 이 부지사는 "내년도 경기도 예산안의 원만한 처리를 위해 대(對)도의회 업무를 보느라 늦었다"고 양해를 구했다.
집무실은 난향(蘭香)으로 가득했다.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각계에서 보내온 축하 난과 화분이 10평 남짓한 그의 집무실을 거의 메웠다. 집무실에 가득 퍼진 난향처럼 경기도에서 시작한 첫 연정이 꼭 성공해 여러 곳으로 확산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인터뷰를 통해 읽을 수 있었다.
부지사 임기는 2016년 6월 말까지다. 그 두 달 전에 20대 총선이 치러진다. 그래서 총선 출마 가능성을 물었다. 이 부지사는 "우선은 제 역할에 충실한 부지사가 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고는 "(부지사) 연임할 수도 있으니까"라고 멋쩍게 웃으며 즉답을 피했다. 그는 17대 국회의원(수원 권선)을 지냈다. 18대 때도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19대 때는 당내 경선에서 패해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본심이 부지사 연임에 있는지, 금배지에 있는지 현재로선 물음표다.
그는 성균관대 총학생회장, 경기도 의원, 통합민주당 제5정책조정위원장·대표 비서실장, 열린우리당 원내대변인 등을 지낸 정치인이다. 행정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것도 연정 파트너로 행정가의 첫걸음을 내디딘 만큼 각오와 다짐은 남다르다.
이 부지사는 "연정은 경기도민의 기대와 성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면서 "연정의 두 주체인 도와 도의회는 도민들의 심부름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회통합부지사의 역할을 "도와 도의회를 잘 조정하고 이끌며 유지하는 또 다른 심부름꾼"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도민의 기대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면서 "때문에 연정이 쉽게 무너지지 않고, 도민들을 위해 서비스할 수 있는 정치시스템으로 발전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수원=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인人터뷰] 이기우 사회통합부지사 “연정은 연립정권 아닌 연합정치… 실질적 성과 내야”
입력 2014-12-17 0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