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 ‘상의원’ 주연 한석규 “연기 천재는 없어… 어떻게 하면 더 잘할까 항상 고민”

입력 2014-12-17 02:10 수정 2014-12-17 19:25
조선시대 궁중의상을 소재로 한 영화 '상의원'에서 어침장 조돌석 역을 맡은 한석규가 바느질을 하는 장면. 한석규는 실감나는 연기를 위해 바느질을 배우는 등 혼신을 다했다. 영화사 비단길 제공
배우 한석규(50)는 인터뷰를 안 하기로 악명이 높다. 공식 기자간담회 외에는 개별 인터뷰를 일체 하지 않는다. 자신을 불편하고 힘들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런 그를 지난 10일 영화 ‘상의원’ 시사회 후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 롯데시네마 지하 음식점에서 열린 미디어데이를 통해 만났다. 밤늦게까지 진행된 이 자리에서 그와 2시간가량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5.2%의 저조한 시청률로 지난 9일 종영된 SBS 사극 ‘비밀의 문’ 얘기부터 꺼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반응이 좋았는데 ‘비밀의 문’은 그렇지 못했다. 왜 그런 거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완성도가 떨어져서 그런 것”이라고 답했다. “세종대왕은 밝은 얘기이고 영조와 사도세자는 부자(父子) 간에 싸우고 죽이는 얘기잖아요. 어두운 것을 싫어하는 시청자들의 기호에 맞추지 못한 측면도 있지요.”

이번 영화도 사극이다. 조선시대 왕실 의복을 만드는 기관인 상의원(尙衣院)의 어침장(御寢匠) 조돌석 역을 맡았다. 사극에 자주 출연하는 이유가 뭘까. “사극에는 육하원칙 가운데 ‘왜?’를 뺀 나머지가 다 있어요. 그런데 배우라는 직업은 왜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던져요. ‘왜 그런 일을 했을까?’ 상상하며 연기하는 거죠. 그런 점에서 사극이 굉장히 매력적이에요.”

화려한 궁중의상을 소재로 한 국내 첫 사극영화라는 점에 끌렸다는 그는 “왕과 왕비의 옷을 짓는 평범한 사람이 왜 정치권력에 휘말렸을까 궁금했다”고 한다. 천민에서 양반으로 신분 상승을 앞둔 조돌석은 원칙과 관습을 중시하는 인물이다. 이에 반해 천재 디자이너 이공진(고수)은 자유분방하면서 편하게 입는 의상으로 인기를 얻는다. 둘이 경쟁하는 과정에서 한석규의 열연이 돋보인다.

하지만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열변을 토하거나 뻐드렁니를 드러내며 침을 튀기는 대사는 기존 사극에서 많이 본 듯하다. “그렇게 보실 수도 있겠죠. 그러나 겹치는 캐릭터는 아니에요. 조선시대 ‘패션왕’이지만 열등감을 가진 인물이죠. 남과 비교하는 순간 사람은 불행해져요. 왕과 왕비, 조돌석과 이공진 네 명이 겪는 갈등도 여기서 비롯되지요. 이에 주안점을 두고 연기했어요.”

조돌석이 곤룡포 등을 지어 바치는 왕은 영조를 연상케 한다. ‘비밀의 문’에서는 영조를 연기한 그가 아니던가. “사실 ‘상의원’ 촬영 끝나고 ‘비밀의 문’에 참여했어요. 평소 영조에 대한 관심이 많았죠. 열등감이 있고 사람을 의심하고 뭔가 불안한 심리상태, 그는 왜 그랬을까 의문이 들었어요. 이번 역할은 좀 다르지만 출신에 대한 콤플렉스는 마찬가지죠.”

얘기를 하다보니 ‘열등감’이라는 단어가 자주 거론됐다. ‘닥터봉’ ‘초록물고기’ ‘접속’ ‘8월의 크리스마스’ ‘쉬리’ ‘베를린’ 등 숱한 화제작에 출연한 그에게도 열등감이 있을까. “늘 열등감을 느끼고 있고 극복하는 게 문제죠. 연기에 천재는 없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더 잘할까, 뭐가 더 좋은 걸까 항상 고심하죠. 감정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퇴화되지 않도록 노력해야죠.”

‘쉬리’ 이후 대박 영화가 별로 없다. 오랜 공백기로 젊은 관객들이 그를 잘 모른다. ‘구닥다리’가 되는 게 아닌가하는 두려움도 생길 법하다. “흥행이 되면 좋겠지만 이제 그런 것에 신경 쓸 나이가 아닙니다. 배우의 좋은 점은 나이 먹는 것을 기다리는 직업이라는 거죠. 60세, 70세가 되어 내가 하고 싶은 역을 하고, 그때를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어요.”

드라마 ‘서울의 달’과 영화 ‘쉬리’에서 호흡을 맞춘 최민식은 ‘명량’으로 1700만 관객을 모았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는 “축하할 일이지만 그래서 민식 선배가 좋다고 하던가요? 행복 하답니까?”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영화가 개인의 삶에 추억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자신만의 분명한 영화철학을 가진 한석규. 그의 숙련된 연기가 있기에 ‘상의원’이 빛난다.

24일 개봉. 127분. 15세 관람가.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