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금천구 '흥일초등학교' 5학년 유재영 차호준 현강식 정준호군은 내년 3월 서울 '신흥초등학교' 6학년이 된다. 전학을 가는 게 아니라 흥일초와 신흥초가 새 학기부터 하나로 합쳐진다. 2월 졸업할 6학년을 제외한 흥일초 1∼5학년 350여명은 내년부터 흥일초에서 300m 정도 떨어진 신흥초로 등교한다. 서울에서 처음 이뤄지는 학교 통폐합이다.
흥일초는 1983년 개교해 30년 남짓한 역사를 갖고 있다. 통폐합은 동네에 중학교가 필요하다는 주민 요구에 따라 추진됐다. 통합이 거론될 만큼 두 초등학교 학생이 줄어든 사정도 주요한 배경이 됐다. 저출산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 앞으로 서울에서도 제2, 제3의 통폐합 학교가 나올 수 있다. 그래서 흥일·신흥초의 통합 과정은 그냥 지나쳐선 안 된다.
◇“전학 가는 느낌 안 들게”=지난 11일 낯선 학교를 다녀야 하는 흥일초 아이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전학 가는 거랑 거의 똑같으니까 왕따 될지도 모르잖아요.”(유재영) “아는 친구가 많지 않아서 잘 못 놀 것 같아요.”(4학년 이주찬)
흥일초와 신흥초는 둘 다 한 학년에 반이 3개씩밖에 없는 작은 학교다. 4·5학년이면 동급생 모두와 적어도 한 번씩은 같은 반을 해봤다. 끼리끼리 뭉칠 ‘악조건’이 갖춰져 있는 셈이다.
두 학교 교사들은 학생들이 ‘전학 가는 것처럼 느끼지 않도록’ 하는 데 가장 큰 신경을 쓰고 있다. 그래서 통합 작업은 ‘친해지기’ 중심으로 진행돼 왔다. 지난 3일 흥일초 전교생은 수업을 마치고 줄지어 교문을 나왔다. 신흥초까지 가는 ‘등굣길 알아보기’ 행사였다. 신흥초 강당에 도착해서는 그곳 전교생과 나란히 앉아 마술과 샌드아트 공연을 봤다. 뒤섞여 놀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낯익은 아이들끼리는 아는 체를 했다.
가을엔 두 학교의 학생·교사·학부모 400여명이 수업 뒤 단체로 관악산 등산을 했다. 개회식은 흥일초에서 하고 산에서 내려와선 신흥초 강당에서 보물찾기 등 레크리에이션 행사를 가졌다. 신흥초 측에서 흥일초 학생 숫자까지 헤아려 수건을 맞춰왔다. 연두색 새 수건에 ‘신흥·흥일 한마음 산행대회 2014. 10. 29’라고 새겼다. 흥일초는 칫솔 치약 비누 등 생활용품 세트를 준비했다. 10월 17일 신흥초 학예회에는 흥일초 6학년 3반 오카리나 연주팀이 특별출연을 했다.
신흥초 신인수 교장은 15일 “5·6학년의 경우 성장하는 아이들의 속성상 갈등을 100%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다툼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새 학기 통합 프로그램을 진행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서로를 배려하는 통합=학교 통합은 아이들만의 일이 아니다. 교장과 교감을 제외한 흥일초 교사 29명도 대부분 신흥초로 자리를 옮긴다. 흥일초 김갑철 교감은 교사들이 처음에는 불만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니까 따라가자’는 데 곧 의견이 모아졌다고 한다.
김 교감은 흥일초 대표로 통합 작업을 이끌었다. 신흥초와의 첫 회의 때만 해도 서먹서먹한 분위기였다. 이를 해소해준 건 시간과 더불어 서로에 대한 ‘배려’였다. 두 학교는 회의 장소를 남북회담 하듯 정했다. 한번 흥일초에서 회의를 하면 다음 번은 신흥초 차례였다. 내년 사용할 음악 미술 체육 등 검인정 교과서를 선정할 때도 양측 교사가 동수로 과목별 위원회를 구성했다.
내년 반 구성도 합의를 마쳤다. 한 반에 흥일초 출신과 신흥초 출신을 절반씩 섞기로 했다. 교사의 관심이 필요한 학생 정보도 공유해 어느 한 반에 몰리지 않도록 할 예정이다. 김 교감은 “우리 학교 다문화 가정 아이들 좀 잘 챙겨 달라고 부탁을 해뒀다”고 말했다.
신흥초는 17일 흥일초 학부모까지 초청해 학교 설명회를 연다. 지난해까지는 낮에 한 차례만 했지만 올해는 맞벌이 부부를 고려해 오후 7시에 한 번 더 한다. 신 교장은 “내년 교육과정에 대한 제안서를 흥일초 학부모에게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통합으로 사라지는 것=통합은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지만 흥일초 구성원들이 느끼는 아쉬움은 진하다. 5학년 남자 아이들은 축구를 신나게 할 수 있는 넓은 운동장이 그리울 것 같다고 했다. 신흥초는 새 교사를 짓느라 운동장이 좁아졌다. 김 교감도 운동장 서쪽 하늘을 가리키며 “해가 질 때 무척 아름다운 곳”이라고 했다. 신흥초는 새 교사 2층에 교실 반 칸 규모로 각 학교 통합 이전의 자료를 전시할 역사관을 만들 계획이다.
흥일초와 신흥초는 각각 다른 특별활동을 해왔다. 흥일초의 자랑은 학교 옥상에 조성한 생태텃밭이다. 지난달에는 텃밭에서 키운 배추로 전교생이 김장을 담가 지역의 불우이웃에게 나눠줬다. 신흥초는 리더십과 독서 교육이 강점이다. 신 교장은 “화분과 흙을 버리지 않고 가져와 텃밭을 활용한 교육을 계속할 예정”이라고 했다.
흥일초의 도서관 책 1만여권과 과학실 실험도구는 전부 옮기지 않는다. 흥일초에서 목록을 만들면 신흥초에서 어떤 것을 가져갈지 고르는 작업을 이번 주 실시한다. 책의 경우 바코드를 입히는 등 전산화를 해야 해 겨울방학에 이사가 시작된다.
흥일초 김혜정 교사는 “이번 통합 과정에 대한 질적 연구가 이뤄지면 다음 차례가 될 학교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기획] 흥일초 화분의 흙까지 존중… 배려로 하나되는 두 학교
입력 2014-12-16 0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