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반도체의 힘… 애플 “구관이 명관” 삼성 부품으로 U턴

입력 2014-12-16 02:45
한때 삼성전자 내에서는 “갤럭시와 아이폰 중 어느 스마트폰을 써야 애사심 있는 직원이냐”는 농담이 오갔다. 아이폰이 애플 제품이긴 하지만 안에 들어간 부품 상당수가 삼성 것이라는 자부심에서 나온 얘기다. 아이폰에 들어간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메모리(모바일D램), 저장공간(낸드 플래시 메모리) 등에는 삼성 로고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하지만 삼성과 애플이 수년간 소송을 벌이면서 이런 농담은 없어졌다. 애플이 삼성전자에 맡기던 물량을 대만 업체로 돌리면서 삼성전자가 애플에 공급하는 부품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내년부터는 이런 상황이 다시 뒤집어질 것으로 보인다. 15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내년에 나올 새 아이폰에 사용될 AP인 A9 생산을 삼성전자에 맡긴 것으로 전해졌다. AP는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부품으로 컴퓨터로 치면 중앙처리장치(CPU)와 같다.

애플은 아이폰6에 들어간 A8을 대만 TSMC에 생산 의뢰했다. A8은 20나노 미세 공정으로 만들어졌다. 애플은 A9을 이보다 더 미세한 공정으로 만들기를 원하고 있다. 공정이 미세할수록 전력 소모가 적고 성능은 좋기 때문이다.

이 기준을 충족하는 건 현재 삼성전자가 유일하기 때문에 애플로선 삼성전자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14나노 핀펫(FinFET)공정을 적용한 AP를 이달부터 기흥 공장과 미국 오스틴 공장에서 생산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내년부터는 생산량을 본격적으로 늘릴 계획이다. 삼성전자가 개발한 14나노 핀펫 공정은 20나노보다 최대 35%의 전력 감소와 20%의 성능 향상이 가능하다.

애플과 삼성전자의 관계가 최악을 벗어난 것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양사는 미국을 제외한 곳에서 진행되던 특허 소송을 모두 취하했다. 지루한 소송이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다른 회사의 제품을 위탁생산(파운드리)하는 것 외에도 자체 개발한 AP 엑시노스를 보유하고 있다. 대부분 삼성전자 스마트폰에 탑재되는데 갤럭시 노트4 같은 프리미엄 제품뿐만 아니라 보급형 모델에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내년 중저가 시장 공략의 첨병으로 내세우고 있는 A시리즈에도 엑시노스가 들어간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에서 AP를 담당하는 시스템LSI만 살아난다면 내년 실적은 크게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 D램이나 낸드 플래시 메모리는 이미 경쟁사가 따라오기 힘든 수준이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D램이나 낸드 플래시는 삼성전자가 경쟁사보다 적게는 6개월에서 1년 이상 기술이 앞서 있다”고 설명했다.

낸드 플래시 메모리는 전원이 꺼져도 정보가 저장되는 반도체다. 차세대 저장장치로 꼽히는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나 메모리카드에 사용된다. 삼성전자는 SSD 시장에서 약 29%의 점유율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최근 3비트 3차원 V낸드를 적용한 ‘850 EVO’를 내놓으면서 경쟁사를 멀찌감치 제친 상황이다.

D램의 경우 스마트폰 쪽 수요는 다소 정체될 가능성이 있지만 웨어러블 기기와 사물인터넷(IoT) 본격화로 수요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