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들이 '돈 풀기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미국을 제외한 나라들의 경제지표는 아직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현 상황을 저명한 투자 전문가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채권왕'으로 불리는 빌 그로스 야누스캐피털그룹 매니저와 '신흥국 투자의 귀재' 마크 모비우스 프랭클린템플턴 이머징마켓그룹 책임자가 최근 논평과 인터뷰를 통해 내놓은 경제 진단을 정리했다.
"부채로 부채 문제 해결 못한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빌 그로스는 최근 마켓 코멘터리(시장 해설)에서 "요즘 여러 중앙은행 총재들이 더 많은 부채를 내서 부채 위기를 해결하려 하고 있는데 그게 과연 가능할까"라고 반문했다.
미국·유로존·일본·중국이 2010년 이후 현재까지 공급한 통화량이 6조 달러에 달하는 가운데 중·일 중앙은행과 유럽중앙은행(ECB) 등이 추가적인 공급에 나서고 있다. 이 같은 경쟁적인 통화 완화로 자산시장은 강세를 보였으나 실물경제와의 괴리가 커져 시장의 불안은 오히려 심해지고 있다. 그로스도 이 부분을 꼬집은 것이다.
그로스는 "부채로 부채 문제를 해결한다는 비상식적인 일이 가능하다고 몇 년 전 이야기한 바 있지만 그것이 가능하려면 몇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제시한 조건은 해당 국가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이 적정할 것,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함께 움직일 것, 그런 정책 기조 속에 민간 투자자들이 계속 자본시장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 등이다. 이를 다 충족하기란 어렵다. 많은 나라들이 GDP 대비 부채 비율이 매우 높은 상황에서 경기 부양에 나서고 있으며, 재정정책은 통화정책과 엇나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로스는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부채는 진짜 성장을 촉진하지도, 부채 위기를 해결하지도 않는다"면서 "인위적으로 수익률을 낮춰 더 많은 부채를 만들어내는 것은 세계 자본주의를 왜곡하는 환율 변동성과 통화전쟁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장은 수익이 낮고 유동성이 감소하는 시점에 도달하고 있다"며 "투자자들은 자산가치 상승이 중단되는 것에 대비해 테이블에서 칩을 일부 거둬들여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1971년 채권펀드 운용사 핌코를 공동 설립한 그로스는 세계 최대 채권펀드 '토털리턴펀드'를 운용하며 높은 수익률을 올려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는 지난 9월 핌코를 떠났고, 야누스캐피털로 옮겨온 지 3개월 만에 야누스 간판 채권펀드의 운용자산이 10배 가까이 불어났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여전해 한국 투자 비중 줄였다"
신흥국 투자의 1인자로 꼽히는 마크 모비우스는 중국과 인도 경제는 긍정적으로 보는 반면 한국에 대해선 다소 부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모비우스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최근 인터뷰에서 한국 주식시장이 저평가됐음에도 프랭클린템플턴이 투자 비중을 낮춘 이유에 대해 "한국의 중소기업은 재벌의 영향권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기 때문에 템플턴의 스몰캡(소형주) 펀드에선 투자 비중을 늘렸지만 대기업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여전하다"고 밝혔다. 그는 "삼성을 예로 들면 가장(이건희 회장)이 병석에 있는 가운데 회사에 대한 통제력을 잃지 않으려는 일가가 자사주를 최대한 매입하기 위해 주가를 억눌렀다는 추측이 나온다"고 말했다.
모비우스가 운영하는 아시안그로스펀드에선 중국과 홍콩 투자 비중이 높아졌고 인도와 인도네시아 자산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모비우스는 "(7%대로 낮아진) 중국의 경제성장률에 대해 크게 우려하지 않으며, 중국 정부가 경제구조 개혁과 내수 중심 경제로의 전환을 제대로 이룰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낙관했다. 그는 인도와 인도네시아에 대해서도 "인도는 현재 진행 중인 개혁이 얼마나 좋은 투자 기회인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며, 인도네시아도 새로 선출된 대통령이 개혁을 강조하고 있다"고 호평했다.
내년 위험한 신흥국은 남아공·터키·브라질·말레이시아
나머지 신흥국 경제의 내년 위험성은 어떨까. 내년에 미국의 기준금리가 인상되면 신흥시장에서 대규모 자금 유출이 불가피하다. 다만 외부 충격에 대한 취약성(펀더멘털 측면)과 양적완화 정책 이후 해외로부터 자금이 유입된 정도(해외자금 노출도)에 따라 국가별로 받는 충격은 차별화될 것으로 보인다.
KDB대우증권에 따르면 국제통화기금(IMF)이 제시한 펀더멘털 관련 지표 임계치를 많이 초과한 신흥국은 남아공과 터키, 브라질로 나타났다. 또 2008년 대비 지난해 말 해외자금 유입 누적 증가액을 지난해 명목GDP로 나눈 값인 해외자금 노출도는 말레이시아가 가장 높았다. 즉 펀더멘털과 해외자금 유입 정도 측면을 고려할 때 남아공, 터키, 브라질, 말레이시아가 미국 금리 인상에 가장 취약하다는 뜻이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월드 이슈] 저명 투자전문가 2인이 본 2015 세계경제 전망
입력 2014-12-16 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