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승부수’는 통했다. 중의원 임기인 향후 4년간 정국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경우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 이후 최장기 집권도 가능할 전망이다.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 ‘보통국가화’로 대변되는 아베 총리의 우경화 정책에 사실상 걸림돌이 사라진 셈이다.
아베 총리의 ‘배수진’은 결국 ‘기사회생’으로 이어졌다. 잇따른 악재에도 자민·공명 연립여당에 대한 일본 국민의 지지는 여전히 굳건함을 보인 셈이다. NHK가 투표를 마친 유권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아베 내각의 지난 2년을 묻는 질문에 59%가 지지 의사를 밝혔다. 마땅한 대안 세력이 없는 상황에서 무당파 유권자들이 대거 자민당 지지로 돌아선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이 압승하면서 아베 총리는 향후 4년간 사실상 ‘백지위임장’을 손에 쥐게 됐다. 무제한 양적 완화를 내용으로 하는 경제정책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총선 결과에 따라 일본 금융 당국은 당분간 엔저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엔화 약세가 지속됨에 따라 세계시장에서 일본 기업과 경쟁하는 한국 수출기업의 타격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주변국의 반발과 일본 국민의 무관심으로 지지부진했던 우경화 정책도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총선 승리로 거칠 것이 없어진 아베 총리는 자신의 임기 내에 숙원사업인 평화헌법 개정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내년은 태평양전쟁 종전 70주년, 한·일 수교 50주년을 동시에 맞는다는 점에서 아베 총리의 행보가 주목된다.
아베 총리의 ‘역주행’이 가시화되면 한국 중국 등 주변국과의 긴장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난징대학살’ ‘731부대’ 등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의 만행을 강조하며 본격적인 ‘역사전쟁’에 나선 중국과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아베 총리는 국방비 지출 축소로 일본의 재무장을 내심 바라는 미국과 공조하는 한편 한국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내는 등 중국과의 ‘신냉전’ 구도 강화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지난달 18일 중의원 해산이 선언되기 전까지 아베 내각은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었다. 정치자금 부정사용 의혹이 불거지면서 여성 각료 2명이 사퇴하는 등 각료들의 스캔들이 잇따랐다. 지난 4월 소비세 증세 이후 소비 둔화세가 뚜렷해지면서 국내총생산(GDP)이 2분기 연속 감소하자 ‘아베노믹스’마저 비판에 직면했다. 아베 총리는 ‘아베노믹스’를 재신임에 부치겠다며 지난달 전격적으로 중의원 해산, 총선 실시를 발표했다.
한편 일본경제 전문가인 쓰쿠바대 타가트 머피 교수는 미국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자민·공명 연립여당의) 압승은 일본 국민에게 ‘불행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일본인들이 이토록 경직된 정치체제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기득권 세력에 무제한적 권력을 부여한다면 도무지 어쩔 도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 관련기사 보기◀
[日 아베 재집권] 정치적 승부수 통했지만 주변국과의 관계는 불통
입력 2014-12-15 04:16 수정 2014-12-15 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