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등석 승객 “조현아,무릎 꿇은 승무원 일으켜 세워 밀쳐”

입력 2014-12-15 04:33 수정 2014-12-15 10:45

검찰의 ‘땅콩 회항’ 사건 수사가 속도를 내면서 당시 기내 상황의 전모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이근수)는 램프리턴을 했던 대한항공 KE086편 항공기의 블랙박스를 12일 수거해 외부 기관에 복원을 의뢰했다고 14일 밝혔다.

조현아 전 부사장 앞자리에 앉았던 일등석 승객 박모(32·여)씨는 13일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에 출두해 진술했다. 기내 상황을 친구에게 실시간 전송했던 모바일 메시지도 제출했다.

검찰 조사를 받은 박창진(44) 사무장과 승객 박씨의 진술을 토대로 재구성한 당시 상황은 대한항공이 애초 발표한 내용과 상당히 달랐다. 검찰은 이번 주 조 전 부사장을 소환할 방침이다.

국토교통부는 15일 박 사무장을 다시 불러 보강 조사키로 했다. 박 사무장이 8일 국토부 조사 때와 달리 11일 검찰에서 조 전 부사장의 욕설·폭행을 적극 진술했기 때문이다. 또 조 전 부사장이 와인을 몇 잔 마신 상태였다는 의혹과 관련해 지난 12일 그를 조사할 때 ‘탑승 전 음주’ 여부도 조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진술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여왕의 ‘난동’…‘땅콩 회항’ 전말=지난 5일 0시50분(현지시간) 미국 뉴욕 JFK국제공항을 출발한 KE086편 퍼스트 클래스에서 조 전 부사장에게 승무원이 마카다미아넛을 봉지째 건네자 그는 고성을 질렀다. 통로 커튼 사이로 일반석 승객들이 다 쳐다볼 만큼 큰 소리였다고 박씨는 전했다. 조 전 부사장이 매뉴얼 얘기를 꺼냈을 때 박씨는 ‘누구이기에 항공기를 잘 아는 걸까’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박 사무장이 달려와 태블릿 PC에 저장된 매뉴얼을 보여주며 “최근 수정된 내용이 반영되지 않았지만 규정에 맞게 이뤄졌다”고 설명했는데 소용없었다. 조 전 부사장은 “야, 너 어디다 대고 말대꾸야. 죄송하다고 해”라며 삿대질을 하고 승무원과 사무장을 무릎 꿇렸다. 박 사무장은 “조 전 부사장이 매뉴얼 파일철로 내 손등을 수차례 찔러 상처가 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무릎 꿇고 있는 승무원을 일으켜 어깨 한쪽을 손으로 밀며 탑승구 벽까지 3m가량 몰아붙이고 ‘내리라’고도 했다. 매뉴얼 파일을 말아 승무원 바로 옆 벽에 내리쳤고 던지듯 팽개쳐진 파일은 승무원의 가슴팍에 맞고 떨어졌다”고 진술했다. 조 전 부사장은 급기야 “당장 연락해서 비행기 세워. 나 비행기 못 가게 할 거야”라고 했고, 박 사무장은 박씨에게 사과한 뒤 비행기에서 내렸다.

박씨는 “귀국 직후 대한항공에 항의했지만 10일에야 임원이 전화를 걸어 ‘혹시 언론 인터뷰를 하더라도 사과 잘 받았다고 얘기해 달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엇갈린 진술…사안별 적용 혐의는=쟁점은 ①조 전 부사장의 기내 소란 행위와 욕설·폭행 ②램프리턴 지시 ③대한항공의 조직적 은폐·축소 여부 등이다.

‘기내 난동’은 참고인 등의 일관된 진술이 있다. ‘항공안전 및 보안에 관한 법률’(항공보안법)은 기장 등의 업무를 방해하거나 폭언, 고성방가 등 소란을 피워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형법상 모욕죄와 폭행죄가 적용될 수 있다. 욕설·폭행이 있었다는 진술에 대해 조 전 부사장은 “처음 듣는 일”이라고 부인했다.

사무장을 내리게 하고 램프리턴을 지시한 것을 어떻게 볼지도 관심거리다. 항공보안법은 위계 또는 위력으로 운항 중인 항공기의 항로를 변경해 정상운항을 방해하면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한다. 대한항공은 8일 발표문에서 “임원은 항공기 탑승 시 서비스·안전 점검 의무가 있다”며 “정당한 문제 제기와 지적”이라고 주장했다. 또 박 사무장이 서모(50) 기장과 램프리턴을 협의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조종사 노조는 “조 전 부사장이 지위를 이용해 사무장이 기장에게 리턴해야 한다고 보고하도록 지시했다”고 반박했다.

대한항공의 조직적 은폐·축소 정황에 강요죄가 적용될지도 주목된다. 박 사무장은 “직원들이 집에 찾아와 ‘매뉴얼을 숙지하지 못해 조 전 부사장이 화를 냈지만 욕한 적은 없고 스스로 비행기에서 내렸다’고 진술하도록 강요했다”고 밝혔다. 이 주장이 사실이면 조 전 부사장뿐 아니라 대한항공 관계자도 피의자 신분으로 바뀔 수 있다.

승객 박씨가 제출한 메시지는 주요 증거로 활용될 전망이다. 다만 조종석에서 오간 대화가 담긴 블랙박스의 조종실 음성녹음 장치는 2시간마다 앞선 기록을 덮어쓰도록 돼 있어 당시 상황을 보여줄지 미지수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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