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회유?… ‘민정비서관실 제안’ 진위 논란

입력 2014-12-15 03:21 수정 2014-12-15 10:06
14일 공개된 서울지방경찰청 정보1분실 최모 경위의 유서. 동료 한모 경위에게 ‘민정비서관실에서 너에게 그런 제의가 들어오면 당연히 흔들리는 것’이라고 했고(왼쪽), 16년 동안 일해도 ‘대출 끼고 전세 사는’ 경찰 공무원의 현실과 ‘힘없는 경찰 조직’에 대한 심경도 드러냈다. 곽경근 선임기자

과연 청와대가 문서 유출의 핵심 피의자인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 두 경찰관을 회유하려 했을까. 정보1분실 최모(45) 경위의 유서에 그런 정황을 보여주는 대목이 담겨 유출 사건을 둘러싼 의혹의 시선은 다시 청와대를 향하게 됐다. 청와대는 “어떤 제안도 없었다”고 즉각 부인했다.

◇‘민정비서관실의 제안’ 진위는=최 경위와 한모 경위는 지난 9일 자택에서 체포됐다. 검찰은 이튿날 두 사람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1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 후 기각됐다. 최 경위는 영장심사 법정에서 청와대의 ‘회유’ 시도를 언급했다고 한다. 민정수석실에 파견된 경찰이 한 경위를 찾아와 ‘혐의를 인정하면 입건하지 않겠다’고 회유했다는 것이다. 한 경위가 검찰에 체포되기 전날인 지난 8일 이 얘기를 전했다고 최 경위는 주장했다.

유가족의 전언도 이를 뒷받침한다. 최 경위의 친척 A씨는 국민일보 기자와 만나 “한 경위가 실질심사에서 양심선언을 했다. 그래서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 경위의 형도 13일 기자회견에서 “동생을 죽음으로 몰고 간 가장 큰 이유를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다. 구속영장이 발부되지 않은 이유를 찾아보라”며 같은 내용을 암시했다. 최 경위의 변호인 A씨는 “내가 할 말이 아니다”고 했다.

검찰은 정보1분실에서 한 경위가 문건을 대량 복사한 뒤 최 경위가 세계일보에, 한 경위가 한화그룹 등에 건넨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인정했던 한 경위가 진술을 번복했다면 검찰 수사는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유족들은 이를 바탕으로 청와대와 검찰이 최 경위를 죄인으로 몰고 갔다고 여기고 있다. 형은 “수사가 바르게 된다고 보십니까”라고 반문하며 “동생에게 누명을 씌우려니 그렇게 된 것이다. 검찰도 위에서 지시하니까 따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청와대는 대응할 가치가 없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민정수석실의 어느 누구도 한 경위를 접촉한 사실이 없고, 따라서 제안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국민일보는 자세한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한 경위와 다각도로 접촉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나를 유출 주범으로 몰고 가…”=최 경위는 문서 유출 사건에 함께 연루된 사람들에게도 글을 남겼다. 그는 ‘정보관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사람을 접했지만 그중 진정성 있던 아이들은 세계일보 ○○○ 기자와 조선일보 △△△ 기자’라면서도 ‘세계일보 기사로 이런 힘든 지경에 오게 되고 조선일보에서 저를 문건 유출의 주범으로 몰고 가 너무 힘들게 됐다’고 썼다. 또 ‘한 경위도 저와 친하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이런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오게 된 것을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세상의 멸시와 경멸은 참을 수 있다. 그러나 진실은…’이라며 복잡한 심경을 남겼다.

경찰 생활에 대해서는 ‘이처럼 힘없는 조직임을 통감한 적이 없다. 일원으로서 많은 회한이 들기도 했다’면서도 ‘그러나 당당하게 공무원 생활을 했기에 지금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한 경위에게는 장문의 글을 남겼다. 그는 ‘너무 힘들어하지 마라. 나는 너를 이해한다’며 ‘내가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은 너와 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회사 차원의 문제’라고 했다. 이어 ‘너무 힘들었고 이제 편안히 잠 좀 자고 쉬고 싶다. 사랑한다. 내가 없는 우리 가정에 힘이 되어 달라’고 남겼다. 언론에 대해서도 ‘부디 잃어버린 저널리즘을 찾아 달라’고 당부했다.

◇자살 전 변호사 만나 펑펑 울어=12일 새벽 2시쯤 서울구치소에서 나온 최 경위는 자택에서 잠깐 눈을 붙인 뒤 오전 9시에 일어나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구속영장이 기각됐지만 무척 힘든 표정이었다고 한다. 최 경위의 변호인은 “최 경위가 1시간가량 향후 수사·재판 계획을 논의하던 중 현 상황에 대한 아쉬움과 서운함을 털어놓더니 갑자기 펑펑 울기 시작했다. 고생하고 나와서 그런가보다고 하고 말았는데 내가 둔했나 싶다”고 자책했다. 이어 문서 유출 혐의에 대해 “검찰은 객관적 증거를 확보했다고 생각하는데 본인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승산이 생겼다고 서로 격려하는 자리였는데…”라고 했다.

최 경위는 이어 오전 11시30분 형에게 전화를 걸어 “미행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차량을 버려라. 내가 데리러 갈게”라고 말한 형에게 최 경위는 “잘못한 게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답했다. 이것이 최 경위와 형의 마지막 통화였다. 휴대전화 전원은 12일 오후 1시30분을 전후로 꺼졌고 다시는 켜지지 않았다.

최 경위의 형은 “경찰공무원 생활을 해오면서 빚 6000만원을 안고 전세 1억6000만원에 사는 모범적인 공무원이었다”며 “그렇게 살아온 동생이 너무나 힘들고 견디지 못할 정도로 압박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1969년 2월생인 최 경위는 서울의 한 사립대를 졸업했다. 학원 논술강사 생활을 하다 1999년 순경으로 경찰관 생활을 시작했다. 2012년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재직 당시에는 청장 부속실에서 근무했다.

이천=양민철 기자, 나성원 기자

▶ 관련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