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정윤회 문건’ 수사] “너무 억울하게 누명 써 정치권서 죽음 몰고 가”

입력 2014-12-15 04:23 수정 2014-12-15 10:08
14일 공개된 서울지방경찰청 정보1분실 최모 경위의 유서. 동료 한모 경위에게 ‘민정비서관실에서 너에게 그런 제의가 들어오면 당연히 흔들리는 것’이라고 했고(왼쪽), 16년 동안 일해도 ‘대출 끼고 전세 사는’ 경찰 공무원의 현실과 ‘힘없는 경찰 조직’에 대한 심경도 드러냈다. 곽경근 선임기자

14일 오전 11시30분쯤 서울 강동구 명일동성당 지하 장례식장. 전날 목숨을 끊은 서울지방경찰청 정보1분실 최모 경위의 유가족 7명이 불 꺼진 빈소 앞 마룻바닥에 말없이 둘러앉아있었다. 장인·장모를 비롯한 처가 식구와 큰누나, 어린 아들과 딸 등이었다. 모두 기진맥진한 모습이었다.

다가가 기자 신분을 밝히자 일부 유가족이 천천히 팔을 들어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창백한 얼굴과 붉고 축축한 눈에는 슬픔과 황망함, 경계와 원망이 뒤섞여 있었다. 빈소에는 아직 영정사진이 걸리지 않았고, 최 경위 시신은 강원도 원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부검 중이었다.

빈소로 이어지는 식당 오른편에는 한눈에도 경찰관으로 짐작할 수 있는 남성 10여명이 침통한 표정으로 모여 있었다. 정보1분실 직원 등이었다. 최 경위와 2년 정도 같이 근무했다는 직원은 “좋은 후배를 잃어 마음이 아프다. 최 경위 아내를 무슨 낯으로 대하느냐”며 눈시울을 붉혔다.

장례식장 밖에서 만난 다른 정보1분실 직원은 심경을 묻자 눈물만 흘렸다. 1분실 내부 상황에 대해서는 모두 말을 아꼈다.



장례식장 입구에는 낮 12시쯤 장례일정 등이 적힌 안내문이 붙었다. 최 경위의 세례명은 교황과 천사 이름을 합친 ‘첼레스티노가브리엘’이었다. 아내의 권유로 최근 세례를 받았고 아내도 기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오전 미사를 마친 교인들은 하나둘 장례식장을 찾았다. 최 경위와 친분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안내문을 보던 중년 남성은 “고인은 모르지만 자매(최 경위 아내)를 안다”고 했다.

원주에서 부검을 참관했던 친형 A씨와 외사촌 등은 오후 4시쯤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2시간 뒤 이들은 유서 14장 중 가족에게 남긴 내용을 뺀 8장의 사본을 취재진에게 배포했다. A씨는 “저희는 유서를 언론에 공개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동생이 억울하게 누명 써가면서 살았기에 세상에 알리기 위해 말씀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정라인에서 회유한 내용이 있을 거다. 그런 걸 잘 살펴보시라”고 강조했다. 최 경위의 어머니는 이날 저녁 빈소에서 실신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전날 밤 시신이 옮겨진 경기의료원 이천병원 앞에서 기자들에게 “우리 동생이 너무나 억울하게 누명을 썼고 그 압박감에 세상을 떠난 것”이라며 “정치권에서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비난했었다.

장례 미사는 16일 오전 8시30분 치러진다.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해 절두산 순교성지 ‘부활의 집’에 안치할 예정이다.강창욱 양민철 황인호 기자

kcw@kmib.co.kr

▶ 관련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