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경영진, 사내·노조 게시판 상시적 검열”

입력 2014-12-15 04:34 수정 2014-12-15 10:47

“대한항공은 지금 ‘양파항공’으로 불린다. 까도 까도 자꾸 (문제가) 나온다는 뜻이다.”

‘땅콩 회황’ 사태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대한항공 내부에서 경영진 행태를 정면으로 비난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직원끼리 서로 감시하게 만들고, 온라인 사내게시판과 노조게시판까지 검열하는 등 ‘왕조시대’를 연상케 한다는 지적이다.

대한항공 조종사 A씨는 1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한웨이’라는 직원 전용 내부 인트라넷이 있고 그 안에 ‘고객의 소리’ 게시판이 있다. 이 게시판에 글이 올라오면 경영진이 직접 비판적 댓글을 달며 위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어느 사무장이 업무 관련 글을 올렸는데 ‘이런 건방진’이란 댓글이 달렸고, 특정 사안을 이렇게 조치했다는 글에도 ‘누구 마음대로’란 댓글이 붙었다”며 “온라인 게시판에 대한 통제가 심해 직원들이 무서워한다”고 했다.

기장과 부기장, 승무원끼리 서로 감시하게 만든다는 지적도 나왔다. 같은 비행기에 타는 승무원 중 한 명을 지정해 어떻게 일을 하는지, 사무장이 무슨 말을 했는지 등을 기록해 보고토록 했다는 것이다. 노조 등이 반발하자 2009년 공식적으로 이런 보고 의무를 없앴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상호감시체계는 가동되고 있다고 A씨는 지적했다.

그는 “‘이 승무원은 키가 크니 행사 활용도가 높다’거나 ‘모 승무원은 남자친구가 무슨 일을 해서 앞으로 주목해야 한다’ 같은 개인적 부분까지 보고돼 인권침해의 소지도 있다”며 “직원끼리 서로 감시케 해 사내 문화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오로지 한 사람 눈치만 보는 회사로 만든다”고 꼬집었다.



지난 11월 조종사 노조 홈페이지의 ‘열린 마당’ 게시판에는 ‘07사번 부기장’이란 아이디로 회사를 비판하는 글이 올라왔다. 사측은 바로 조사에 나서서 이 글을 올린 직원을 찾아냈고 글을 삭제토록 요구했다고 한다. 해당 글은 현재 사라진 상태다. 하지만 이후 조종사 노조원들은 항의 표시로 ‘07사번 부기장’이란 아이디를 달아 회사 비판 글을 올리고 있다. 노조 측은 “회사가 글을 올린 조합원 개인을 직접 접촉했다는 건 정당한 노조 활동을 위축시키는 부당 노동행위”라며 성명을 내기도 했다.

대한항공은 ‘땅콩 회항’ 항공기의 기장이 지난 11일 검찰에 출석할 때 회사 변호사와 동행토록 한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조종사 노조에서 해당 기장에게 변호사를 따로 선임토록 조언했지만 회사는 사측 변호사를 대동케 했다”면서 “이 과정에서 회사 측이 기장에게 밤에도 수차례 전화하며 압박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는 14일 성명을 내고 국토교통부와 검찰 수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규정은 항공기 조사 관련 특정 자격을 가진 사람만 기장에 대한 조사를 할 수 있고 사법기관은 그 결과 범죄 행위가 발견될 경우 수사를 시작토록 권고하는데 이를 어겼다는 것이다.

임지훈 기자 zeitgeis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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